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키에프의 별 Natalija Ermolenko-Yuzhina (나탈리야 에르몰렌코-유지나)

정준극 2008. 2. 27. 16:56
 

▒ 키에프의 별 Natalija Ermolenko-Yuzhina (나탈리야 에르몰렌코-유지나)


러시아의 소프라노 나탈리야 에르몰렌코-유진(1881-1937)은 20세기 초반 러시아 드라마틱 소프라노의 주도적 인물이었다. 어느날 당대의 위대한 성악가 오다 슬로바드카야(Oda Slobadkaya)가 나탈리야의 노르마 공연을 보고 너무나 깊은 감동을 받아 나탈리야야말로 진정한 오페라의 여신(디바)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슬로바드카야는 특히 마지막 장면의 드라마틱한 부분에서 나탈리야가 보여준 놀라운 표현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한편 지나친 장식적인 테크닉에 대하여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드라마틱한 아리아에 장식적인 테크닉은 적당하지 않다는 해석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튼 나탈리야가 다른 아리아에서 보여준 놀랍고도 숨 막히는 듯한 표현은 가히 전설적이라는 평가였다. 불행하게도 그는 다만 몇장의 레코드만 남겼다. 그나마 이들 레코드를 통하여 그의 음성과 감정표현에 대한 테크닉을 들을수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가 남긴 대표적인 아리아로서는 유디트(세르보)의 섬뜩한 아리아, 젠타(방랑하는 화란인)의 전율을 주는 아리아, 이고르 공에서 야로슬라브나의 탄식적인 아리아, 아이다에서의 비통한 아리아, 그리고 차이코브스키의 마녀(The Enchantress)에서 나타시아의 아리아를 들수 있다. 아이다에서의 아리아는 남편 다비드 유진과 함께 부른 것이다. 미안하게도 당시 남편 유진의 음성은 내리막길에 있었다.


나탈리야 에르몰렌코(1881-1937)는 키에프와 파리에서 공부를 하고 1900년, 19세때에 키에프에서 ‘스페이드의 여왕’의 리사(Lisa)로서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였다. 이듬해 그는 생 페테르부르그로 가서 활동하다가 4년후에는 모스크바의 볼쇼이에 합류하였다. 이때 그는 테너 다비드 유진(David Yuzhin)을 만나 결혼하였고 자기의 이름에 Yuzhina를 추가하여 에르몰렌코-유지나가 되었다. 이어 2년 동안은 부부가 모스크바의 지민(Zimin)오페라단에 소속되어 함께 무대에 섰다. 나탈리야는 또한 ‘러시아 오페라단’(Opéra Russe: 당시 러시아 상류사회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것이 유행이었다)의 가장 뛰어난 소프라노였다. 이 오페라단은 1908년에 파리에서 ‘보리스 고두노프’를 처음으로 서유럽에 소개하였다. 러시아로 돌아온 나탈리야는 1차대전이 일어난 다음해인 1915년부터 1920년까지 5년동안 생 페레르부르그의 마린스키극장에서 활동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역할은 브륀힐데, 노르마, 발렌틴, 리사, 야로슬라브나, 비올레타, 카르멘, 그리고 상당수의 러시아 오페라 역할들이었다. 그중에서 그의 가장 큰 성공은 세르보(Servo)의 유디트(Judith)였다.


나탈리야는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이를 피하여 1924년 프랑스로 이민을 떠나 파리에 정착하였다. 그는 파리에서 간혹 오페라 무대에 등장하였지만 활발한 것은 아니었다. 기록에 따르면 1906-07년 시즌에 라 스칼라에 출연하였다고 하지만 확인은 되지 않았다. 그 이후의 소식에 대하여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파리의 기록에 의하면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은 1948년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1937년이라는 것이 더 신빙성을 가지고 있다. 위대한 러시아의 소프라노는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의 여파로 찬란한 영광을 접어두어야 했다.

 

 

 이고르 공에서의 야로슬라바                            악마(The Demon)에서의 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