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전설과 신화를 창조 Nellie Melba (넬리 멜바)

정준극 2008. 2. 27. 16:57
 

▒ 전설과 신화를 창조 Nellie Melba (넬리 멜바) - 마담 멜바

 

햄릿의 오펠리아

 

현대 오페라의 연혁에 있어서 넬리 멜바만큼 수많은 에피소드를 뿌리며 세계의 음악계를 압도했던 디바도 없을 것이다. 멜바는 전설 그 자체이며 오페라의 신화를 창조한 인물이었다. 1950년대에 나온 ‘멜바의 연정’이란 영화는 멜바의 화려한 디바 생활을 조명한 작품으로 세계 각국에서 상영되어 멜바라는 이름을 다시금 온 세상에 알리게 해준 것이었다. 멜바가 얼마나 이름을 떨치고 유명했는지는 그가 즐겨 먹던 칵테일을 ‘피치 멜바’라고 이름 붙였고 그가 아침마다 먹던 얇게 바싹 구운 토스트를 ‘멜바 토스트’라고 불러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만 보아도 잘 알수있다. 그의 조국인 오스트레일리아는 멜바를 기념하여서 지폐에 멜바의 초상화를 넣었다. 영연방에서 여왕이외의 여성이 화폐에 등장한 경우는 처음이다.

 

 

멜바는 당대의 가장 위대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였다. 그러나 그의 출신에 대하여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어서 모호하다. 아마 밝히기 싫은 과거가 있지 않을까 라는 의구심을 던져준다. 멜바는 호주에서 태어났지만 호주의 어느 곳에서 태어났는지는 확실치 않으며 다만 멜본(Molbourne)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을 뿐이다. 멜바의 이름도 원래는 ‘헬렌 포터 미첼’이었으나 무대 생활을 위해 넬리라고 이름을 바꾸었으며 멜바라는 성은 고향인 멜본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신통한 것은 누구든지 그를 부를때 넬리라고 부르지 않고 멜바라고만 부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니 린드(Jenny Lind)의 경우에는 린드라고 부르지 않고 제니라고 부른다. 아무튼 멜바는 일찍이 결혼하여 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러나 성악가가로 대성하기 위해 남편과 아이를 뒤에 두고 집을 떠났다. 멜바가 27세 때였다. 파리로 간 멜바는 당대의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틸데 마르케시(Mathilde Marchesi)가 공연하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아 무조건 그를 찾아가 노래를 배우겠다고 하여 마침내 문하에 들어갔다.

 

비올레타

 

1년후 멜바는 브뤼셀에서 첫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그리고 2년후에는 이미 런던과 파리에서 디바의 위치를 굳힐 정도로 놀라운 성장을 했다. 멜바는 위대한 오페라 소프라노였다. 하늘이 내려준 음성이라는 평을 받은것만 보아도 알수있다. 다만 오페라에서의 연기는 뛰어나지 못했다. 이에 대하여 멜바는 ‘오페라는 노래가 주인이다. 감정적이 연기에 너무 치중하다보면 노래인생을 단축시키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멜바는 자기의 목소리에 색채를 넣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러므로 감정에 넘친 연기를 하지 않더라도 노래로서 극적인 표현을 충분히 하여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멜바의 대표적인 아리아는 구노의 파우스트 중에서 ‘보석의 노래’이다. 멜바의 노래에 대하여 유명한 평론가 헨리 플리전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음정에 있어서 플랫이나 샤프가 되는 일이 결코 없다. 한 점의 티도 없다. 가볍고 정확하게 음정을 공격한다. 소리를 내기위해 일부러 강요하는 법이 없다. 가장 빠른 파싸지(Passage)에서도 완벽한 음정과 음색을 유지한다. 특히 고음에서는 놀랍도록 안정됨을 보여준다.’ 멜바의 메토로 데뷔는 1893년 루치아로였다.

 

 

일부 디바들이 그런것처럼 멜바도 성깔이 만만치 않았다. 어느때 코벤트 가든에서 미미를 맡은 일이 있었다. 뮤제타는 유망주로 꼽히는 젊은 프릿치 쉐프(Fritzi Scheff)였다. 프릿치는 팔팔하고 콧대가 높은 성격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문제는 프릿치가 감히 대선배인 멜바를 제치고 무대에서 지나치게 과장된 연기를 하여 일부러 관중들의 눈을 끌어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습을 본 멜바는 그렇다고 뭐라고 말할수도 없고 그저 ‘놀고 있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프릿치가 제2막에서 뮤제타로서는 가장 중요한 아리아인 ‘뮤제타의 왈츠’를 부를 차례가 되었다. 사실 프릿치는 연기만 난리일뿐 노래는 대단하지 못했다. 갑자기 멜바가 프릿치와 함께 ‘뮤제타의 왈츠’를 부르기 시작했다. 특히 빛나는 하이 B 내츄럴에서는 프릿치의 음성을 커버하며 멋있게 아리아를 불렀다. 악보에도 없었던 유니손(Unison)이었다. 막이 내렸다. 창피를 당했다고 생각한 프릿치는 화를 내며 코벤트 가든에서 나가버렸다. 당연히 공연은 중단되었다. 나머지 시간은 멜바가 무대에 나와 루치아의 ‘광란의 장면’을 부르는 것으로 채워졌다. 관중들을 라 보엠이 중단된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멜바의 아리아를 듣게 되자 더욱 열광하였다. 멜바의 무서운 승리였다. 이렇듯 멜바는 무대를 군림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기 이외의 소프라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참지 못했다. 그래서 느닷없이 그 소프라노의 아리아를 대신 부르는가 하면 중간에 애드리비툼으로 노래를 만들어 넣기도 하여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 더러 있었다.

 

파우스트의 마르게리테

 

멜바에 얽힌 에피소드는 수많이 있지만 한가지만 더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은 일도 있었다. 어느때 멜바는 카루소와 함께 메트로에서 라 보엠을 공연한 일이 있다. 카루소는 멜바의 성격이 보통 아니라는 소리를 들었기에 한번 골탕을 먹여줄 생각이었다. 제1막에서 카루소(로돌포)가 ‘그대의 찬손’을 부르며 어둠 가운데 멜바(미미)의 손을 잡는 장면이 있다. 카루소는 테이블 밑에서 멜바의 손을 잡으면서 손에다가 뜨듯한 살라미 소시지를 슬며시 쥐어 주었다. 깜짝 놀란 멜바는 후다닥 소시지를 무대 위로 팽개쳤다. 사람들은 멜바가 웬 소시지를 던지는 바람에 ‘원, 별일도 다 있네!’라고 생각했지만 멜바는 그런 장난을 결코 용납하지 못했다. 아일랜드 출신의 테너 존 맥코맥은 런던 데뷔에서 불행하게도 멜바와 함께 공연하게 되었다. 커튼콜 시간이 되자 맥코맥은 멜바를 에스코트하여 커튼 앞으로 나와서 멜바와 함께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정중히 답례코자 하였다. 갑자기 멜바가 맥코맥을 뒤로 밀어붙이더니 ‘이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어느 누구도 멜바와 나란히 서서 인사할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