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세스 팻 Patricia Munsel (패트리시아 먼젤)
‘프린세스 팻’으로 알려진 패트리시아 먼젤은 성악가 겸 배우로서 다재다능하였다. 그는 노래도 잘 불렀고 발레리나였으며 탭 댄스도 프로급이었고 심지어 리듬 휘파람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보다도 패트리시아 먼젤이라고 하면 메트로에 가장 어린 나이로 데뷔한 소프라노라는 것이 인상 깊은 일이다. 패트리시아가 18세 때였다. 메트로의 오디션은 전국 중계 라디오로서 진행되었다. 이 오디션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려면 여러 단계의 예선을 거쳐야하며 그런 단계를 거칠수록 전국적인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기 마련이다. 이 라디오 쇼에서 패트리시아는 상패와 상금 1천불을 받았다. 그리고 메트로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메트로의 무대에 정식으로 올라서기 전에 패트리시아는 우선 고향 스포카네(워싱턴주)로 돌아갔다. 메트로 전국 오디션에서 우승한후 첫 리사이틀을 갖기 위해서였다. 스포카네의 패트리시아 먼젤 독창회장은 그 전날부터 표를 구하기 위한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스포카네 주민들은 메트로의 전국 오디션에서 당당히 최우수상을 받아 스포카네의 명예를 높인 패트리시아를 대대적으로 환영하였다. 어떤 열성 팬은 패트리시아를 보기위해 350마일을 달려오기도 했다.
패트리시아의 아버지는 치과의사였다. 그는 패트리시아가 최소한 치과의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의 음악적 재능을 파악하고 열심히 후원했다. 어머니는 패트리시아가 12살 때부터 성악 레슨을 시켰다. 어느때 패트리시아는 피츠버그 심포니와 협연할 기회가 있었다. 피츠버그 심포니의 지휘자는 패트리시아의 재능을 크게 주목하여 뉴욕으로 가서 본격적인 공부를 하도록 적극 권고했다. 그러나 패트리시아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꾸준히 레슨을 받으며 혼자서 공부에 전념하였다. 패트리시아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운동에도 특기가 있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축구부 팀장이었다. 그는 수영, 기계체조, 배구, 농구, 펜싱들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발레는 이러한 운동이 뒷받침해 준것이었다. 패트리시아는 고등학교 때부터 무대 활동을 했다. 길버트-설리반의 ‘펜잔스의 해적’에서 주역을 맡았었다. 패트리시아가 16세때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뉴욕으로 갔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음악 공부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패트리시아는 뉴욕에서 성악, 무대 연기, 오페라, 그리고 프불어와 이탈리아어를 공부했다. 오페라 디바가 되기 위한 완벽한 준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18세때에 메트로의 라디오 오디션에 출전하여 최우수상을 받게 된것이다.
고향 스포카네에서 뜨거운 환영을 받았던 패트리시아는 메트로에서의 출연을 위해 뉴욕으로 돌아왔다. 1943년이었다. 첫 번 맡은 배역은 미뇽의 필랭(Philine)이었다. 주역이 아니어서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메트로의 음악감독은 패트리시아의 뛰어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를 높이 평가하여 같은 해에 이번에는 과감하게 주역을 맡겼다.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올림피아와 리골레토에서 질다였다. 하지만 평론은 그의 음성이 아직 충분히 성숙되지 못하였다고 하며 호평을 아꼈다. 이듬해 그는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로지나를 맡았다. 이번에는 당연히 받아야 할 인정을 받았다. 그로부터 패트리시아는 메트로뿐만 아니라 각지의 유명 오페라하우스에서 최우선으로 초청코자 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자선음악회, 군부대 위문 공연등을 자주 가졌다. 그에 대한 인기는 날로 높아졌다. 영화에 출연한 것은 그의 명성을 크게 떨치게 해준것이었다. 1953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의 음악영화 ‘넬리 멜바’(우리나라에서는 ‘멜바의 연가’라고 불렀음)에 멜바로 출연했고 1955년에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생애를 그린 ‘The Great Waltz'에 출연했다. 그는 TV 연속서부극인 ‘The Wild, Wild West’와 ‘The Alcoa Hour’에 고정으로 특별 출연하였다. 또한 1957년부터 ABC 방송에서 시작된 ‘패트리시아 먼젤 쇼’는 대단한 인기를 끈 것이었다. 뮤지컬 버라이어티였지만 오페라 아리아도 자주 선 보였던 프로그램이었다. 1944년에 라이프 표지로 등장했던 것은 또 하나의 에피소드이다.
1943년 오페라에 데뷔한 이래 패트리시아 먼젤은 무대, 영화, TV에서 노래를 불렀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전문적인 경력을 시작하였으므로 그는 어떤 오페라의 역할에도 자기의 음성을 맞출수 있도록 공부를 했다. 그는 메트로 입단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노래와 연기 레슨을 받았다. 그러므로 당시 노래에 있어서나 연기에 있어서 패트리시아를 능가할 사람은 없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생애를 그린 The Great Waltz
필린(Philline)
타임지 커버로 등장한 먼젤 음반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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