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인의 연인 Renée Fleming (르네 플레밍)
2009년도 비엔나 슈타츠오퍼 칼렌다의 표지에 나온 르네 플레밍의 화려한 모습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은 1959년 발렌타인 데이에 펜실베이니아주 인디아나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르네 플레밍은 ‘소프라노 음성의 황금 기준’(Gold standard of soprano sound)이라고 불릴 모든 만큼 소프라노를 대표하는 음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어릴 때 음악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뉴욕주의 로체스터로 가서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시절을 보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후 포츠담에 있는 뉴욕주립대라교(SUNY)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성악을 전공했다. SUNY를 졸업한 르네 플레밍은 이어 로체스터에 있는 이스트만음악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이수했다. 1983년부터 4년동안 그는 뉴욕의 줄리아드 미국오페라센터에 참여하여 유명한 성악교사 비벌리 존슨으로부터 오페라와 연기를 배웠다. 줄리아드 재학중 그는 1년동안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전설적인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와 아를렌 오저(Arleen Auger)에게 사사받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다음해에 그는 잘츠부르크의 란데스테아터(Landestheater)에서 ‘후궁에서의 도피’로 첫 오페라 데뷔를 하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르네 플레밍은 휴스톤에서 열린 일레나 맥컬럼 경연대회(Eleanor MaCullum Competition)에서 우승을 차지하였고 이어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부인을 맡아 스타돔에 올랐다. 뉴욕에서의 데뷔는 1989년 뉴욕시티오페라에서 라 보엠의 미미였다. 3개월후 그는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케루비니의 메데아로 영국 데뷔를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데뷔는 1992년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전해에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부인역을 맡은 휄리시티 로트(Felicity Lott)가 갑자기 병으로 출연할수 없게 되어 메트로 데뷔를 1년 앞당기게 되었던 것이다. 르네 플레밍의 기품있는 미모와 정확한 음정, 아름다운 음색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라 스칼라 데뷔는 1993년 돈 조반니의 돈나 엘리바였다. 1995년 휴스톤 그랜드 오페라에서의 마샬린(장미의 기사) 역할은 르네 플레밍을 세계적 디바로 확고하게 만들어준 것이었다.
르네 플레밍은 그의 경력중 세 편의 오페라의 세계초연에 출연했다. 1991년 코르길리아노의 ‘베르사이유의 유령’에서 백작부인역(메트로), 1994년 수자(Susa)의 ‘위험한 연락관’(The Dangerous Liaison)에서 마담 드 투르벨역(메트로), 그리고 1998년 앙드레 프레빈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셰 뒤부아(Blanche DuBois-샌프란시스코)를 맡은 것이다. 르네 플레밍은 오늘날 전미국은 물론 세계 각지로부터 가장 초청을 많이 받는 소프라노이다. 그는 ‘여자는 다 그래’에서 휘오르딜리지 역, 드보르작의 루살카에서 타이틀 롤, 유진 오네긴에서의 타티아나, 피터 그라임스에서 엘렌 오포드, 구노의 파우스트에서 마르게리트로를 맡아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르네 플레밍은 모든 사람의 연인이다.
마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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