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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소프라노 Rosa Ponselle (로사 폰셀레)

정준극 2008. 2. 27. 17:13
 

▒ 기적의 소프라노 Rosa Ponselle (로사 폰셀레)


마리아 칼라스는 로사 폰셀레에 대하여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은 그가 우리들 모두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명지휘자 툴리오 세라핀(Tullio Serafin)은 ‘나는 생전에 세가지 기적을 만나보았다. 엔리코 카루소, 티타 루포, 그리고 로사 폰셀레이다’라고 말했다.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는 ‘그의 레코드를 계속 듣고 있으면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완벽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제랄딘 화라(Geradine Farrar)는 ‘우리가 성악가를 얘기할 때에는 먼저 두 사람을 제쳐 놓아야 한다. 한사람은 엔리코 카루소이고 다른 한 사람은 로사 폰셀레이다. 그런 후에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얘기할수 있다’라고 말했다. 월터 레게(Walter Legge)는 ‘로사 폰셀레와 같은 소리는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로사 폰셀레는 과연 누구인가?


소프라노 로사 폰셀레는 20세기 여성 성악가 중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는 1887년 미국 콘네티커트주 메리덴(Meriden)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 이민 후예로 태어난 그의 원래 이름은 Rosa Ponzillo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악적 소질이 많았다. 16세 때부터는 언니 카르멜라와 함께 ‘Ponzillo Sisters'라는 이름으로 보데빌 극장(영화도 하고 코미디와 쇼 프로그램도 하는 극장)과 캬바레에서 팝송, 발라드, 오페라 아리아를 불렀다. 언니는 메조소프라노였고 로사 폰셀레는 소프라노였다. 이들의 공연은 예상외의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유명한 뉴욕의 팔레스(Palace) 극장에 출연하기도 했다. 어느때 카루소가 우연히 두 자매의 노래를 들었다. 카루소는 로사 폰셀레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총감독인 줄리오 가티-카사짜(Giulio Gatti-Casazza)에게 오디션을 보도록 주선해 주었다. 오디션에서 폰셀레는 너무 긴장하여서 두 번째 아리아를 부를때에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러나 메트로와의 전속계약은 맺어졌다.


폰셀레의 전설적인 메트로 데뷔는 1918년이었다. 카루소의 상대역으로 베르디의 ‘운명의 힘’을 공연했다. 그로부터 폰셀레는 오페라 무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거의 20년에 걸친 메트로 생활에서 그는 언제나 주역 소프라노였다. 폰셀레의 레퍼토리는 베르디, 모차르트, 마스카니, 비제, 폰키엘리, 몬페메찌 등 주로 이탈리아 오페라였다. 폰셀레의 가장 유명한 역할은 벨리니의 노르마였다. 지금까지 아무도 폰셀레의 노르마에 필적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뛰어나게 순수한 음성, 드라마틱한 연기, 완벽한 콜로라투라 테크닉은 가히 전설적이었다. 폰셀레는 카르멘으로 메트로에서의 경력을 마감하였다. 평론가들은 폰셀레의 카르멘 역할에 대하여 목소리를 합하여 싫어했다. 역시 폰셀레에게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제격이라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폰셀레의 카르멘 공연은 예상을 뒤엎고 대성공이었다. 원래 폰셀레는 스테이지 두려움이 있었다. 무대에서는 고음이 기어들어간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B 플랫보다 높은 소리를 낼 때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음만을 추구하는 벨리니 역할보다 중음에도 비중을 두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폰셀레와 감독간에 레퍼토리에 대한 의견이 달라 폰셀레는 예상외로 빠른 은퇴를 단행했다고 한다. 그가 39세때였다. 늦게 결혼한 그는 볼티모어에 살면서 일체 공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다. 다만, 몇몇 유망주들을 직접 선발하여 가르치고 있을 뿐이었다.


집에서 쉬고 있던 폰셀레에게 볼티모어시는 시립 오페라단의 예술감독을 맡아 달라고 청탁한다. 그가 50대에 접어든 1950년대 중반이었다. 이같은 제안은 폰셀레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것이었다. 그후 폰셀레는 RCA와 레퍼토리 전반에 걸친 레코딩에 들어갔다. 실상 예전에 레코딩 한 것이 많았으나 당시의 기술이 조잡하였기 때문에 RCA측의 요청으로 다시 레코딩을 시작한 것이다. 레코딩은 코네티커트에 있는 그의 저택(Villa Pace)에서 이루어졌다. 유명 레코드 회사인 RCA가 전속 스튜디오가 아닌 개인 성악가의 집에 녹음 시설을 옮겨 레코딩한것도 유례없는 일이었다. 1955년에 나온 앨범은 세계 오페라계를 놀라게 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폰셀레의 그 감미롭고 풍성한 소리를 새롭게 듣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레코딩을 마쳤을 때 폰셀레의 나이는 57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성은 고음에서 저음에 이르기까지 놀랍도록 변함이 없었다. 그는 분명히 소프라노였지만 저음에서는 콘트랄토의 풍부함까지 보여주었다. 물론 고음에서는 뛰어난 피아니씨모를 부를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그 피아니씨모 소리는 메트로폴리탄 극장안의 가장 높은 꼭대기 좌석까지도 확실하게 들렸다. 그는 자기의 거대한 힘을 콘트롤할수 있는 놀라운 테크닉을 가지고 있었다. 로사 폰셀레는 1981년 메리랜드주의 그린 스프링 밸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유태여인의 라헬

     

 라 조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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