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러가 감탄한 Selma Kurz (셀마 쿠르츠)
셀마 폰 할반-쿠르츠
오스트리아의 셀마 쿠르츠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낙소스의 아리아드네’(개정본)의 비엔나 초연에서 체르비네타의 이미지를 처음으로 창조한 소프라노(콜로라투라)이다. 쿠르츠는 1874년 슐레지아의 비알라(Biala)에서 열한명 형제자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슐레지아는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로-헝가리 제국에 속하여 있었다. 가난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회당에서 노래를 불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16세 때부터 비엔나에 가서 성악을 공부할수 있었다. 유명한 에스터하지 공자가 쿠르츠의 비엔나 공부를 지원했다. 이어 파리의 마르케시음악학교를 다닌 쿠르츠는 1895년, 20세의 젊은 나이로 함부르크에서 토마의 '미뇽'으로 오페라에 데뷔하여 놀라운 찬사를 받았다. 이듬해에 그는 프랑크푸르트 오페라로 옮겨 3년동안 활동했다.
마침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했던 비엔나궁정오페라(현 슈타츠오퍼) 음악감독인 구스타브 말러는 셀마 쿠르츠의 공연을 보고 매우 감격하여 그를 비엔나로 초청하였다. 셀마 쿠르츠는 1899년부터 비엔나에서 오페라에 출연했다. 비엔나 슈타츠오퍼 데뷔 작품 역시 토마의 '미뇽'이었다. 셀마 쿠르츠의 음성과 무대연기는 수준 높은 비엔나 시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비엔나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으면서 1929년 은퇴할때까지 활동했다. 말러는 쿠르츠를 각별히 총애하였다. 아마 같은 유태계통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쿠르츠는 당시 비엔나 최고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였으며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소프라노의 한 사람이었다.
나비부인
쿠르츠는 런던과 파리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줄리에트(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에트), 루치아(람메무어의 루치아), 엘리자베트(탄호이저), 질다(리골레토), 오스카(가면무도회) 등으로 정상의 위치를 과시하였다. 미국은 단 한번 방문하였다. 1921년 콘서트를 위해서 였다. 그러나 몸이 아파 일찍 유럽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음성은 어느 음역에서든지 편안하였다. 지글린데와 체르비네타를 모두 맡아 부를수 있는 소프라노는 흔하지 않았다. 쿠르츠는 특별한 경우였다. 사실 쿠르츠는처음에 콘트랄토로 시작했다. 일 트로바토레에서 아주체나를 맡은 것이었다. 그런후에 점점 음역을 높여 갔으며 이에 따라 소리의 힘도 점점 강력해 졌다. 쿠르츠의 음성은 말할수없이 순수하며 감미로웠다. 그는 빠른 파싸지에서 탁월한 테크닉을 보여주었으며 뛰어난 감정표현 연기로서 사랑을 받았다. 그의 프랑크푸르트 데뷔는 탄호이저의 엘리자베트였다. 이후 그의 역할은 로지나, 미미, 질다, 비올레타, 레오노라(일 트로바토레)등이었다. 특히 미미는 비엔나 초연에서 맡아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후 비엔나에서만 1백회 이상 미미를 맡아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서 미미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그는 또한 비엔나 팬들을 위해 나비부인의 역할을 처음으로 창조하였다. 그가 맡은 다른 역할들은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3개 역할, 토스카, 조피(장미의 기사), 엘비라(에르나니), 오스카(가면무도회), 그리고 바그너로서는 에바(명가수), 엘리자베트, 지글린데 등이었다. 그는 비엔나 버전의 '낙소스의 아리아드네‘에서 체르비네타 역할을 처음으로 창조하였으며 이후 체르비네타만 40회 남짓 맡아하였다. 골드마크의 ’시바의 여왕‘에서 쿠르츠가 창조한 ’쿠르츠 트릴‘(Kurz trill)은 유명하다. 17초간이나 트릴을 계속한 것이었다.
비엔나 저택의 정원에서
쿠르츠는 78회전의 레코드를 무려 150여장이나 취입하였다. 그 중에서 일부가 최근 CD로 전환되어 향수적인 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하였다. 쿠르츠는 1933년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9세였다. 4년에 걸친 암과의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 비엔나의 쇼텐키르헤(Schottenkirche)에서 열린 장례식에서는 비엔나 필하모닉이 라 트라비아타 마지막 막의 전주곡을 연주하여 장례식에 참석한 수많은 비엔나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게 했다. 셀마 쿠르츠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가 잠들어 있는 중앙공동묘지의 예술가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는 1910년 세계적으로 저명한 산부인과 의사인 요세프 폰 할반(Josef von Halban)박사와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공식적으로 셀마 폰 할반-쿠르츠(Selma von Halban-Kurz)가 되었다. 딸 데지 할반(Desi Halban: Desiree von Halban-Kurz: 1912-1996)은 성악가가 되었다. 브루노 발터 지휘로 데지가 부른 말러의 제4교향곡 마지막 악장의 노래는 말러의 노래를 가장 정확하게 해석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데시는 세계적 지휘자인 브루노 발터(역시 헝가리 출신)의 피아노 반주로 말러의 가곡을 취입하여 남겼다.
셀마 쿠르츠의 딸 데지(데지레) 폰 할반-쿠르츠. 오른쪽은 브루노 발터 지휘의 뉴욕필과 취입한 데지 할반의 말러의 교향곡 제4번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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