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메조소프라노

그리스의 여신 Agnes Baltsa (아그네스 발차)

정준극 2008. 2. 28. 09:12
▒ 그리스의 여신 Agnes Baltsa (아그네스 발차)

 

아그네스 발차를 보고 있으면 경외로운 존경심으로 자기도 모르게 전율을 느끼게 된다. 그만큼 뛰어난 재능과 함께 거역할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다. 발차는 마리아 칼라스에 이어 그리스의 자랑이며 영광이다. 아그네스 발차(어떤 경우에는 아네스 발차라고 발음함)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메조소프라노이다. 발차는 너무나 당당하고 완벽하다. 그는 무대에서 만인을 압도한다. 그의 존재로서 무대는 완전히 새로운 연출로 들어가야 한다. 그의 노래는 마치 듣고 있는 사람이 오페라의 주인공이 되어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그는 위대한 디바이다.

 

  


아그네스 발차는 1944년 그리스의 레프카스(Lefkas)라는 섬에서 태어났다. 어릴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인 발차는 여섯 살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열네살 때에는 식구들과 함께 아테네로 이사를 갔다. 발차는 1965년 아테네음악원을 졸업했다. 그 해에 발차는 ‘마리아 칼라스 장학금’을 받았다. 발차는 독일의 뮌헨에서 공부를 계속할수 있게 되었다. 1968년, 발차가 24세 때에 처음으로 오페라에 출연하였다.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에서 케루비노(피가로의 결혼)를 맡은 것이다. 이어 1970년에는 25세로서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 옥타비안(장미의 기사)을 맡았다. 발차는 비엔나 슈타츠오퍼에 출연한 역사상 가장 나이어린 옥티비안이었다. 비엔나에서의 오페라 출연은 대단한 갈채를 받은 것이었다. 비엔나 입성이후 발차의 오페라 경력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베를린의 도이치 오퍼(Deutsche Oper),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뮌헨의 바바리안 국립 오페라, 런던의 코벤트 가든, 취리히 오페라, 파리의 오페라를 석권하였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는 매년 고정 출연하는 특권이 주어졌다.

 

카르멘 출연 당시


발차의 레퍼토리는 모차르트(피가로의 결혼, 여자는 다 그래 등), 로시니(세빌리아의 이발사, 라 체네렌톨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등), 마스카니(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베르디(아이다, 운명의 힘, 일 트로바토레, 돈 카를로 등), 벨리니(카풀레티가와 몬테키가), 도니제티(일 캄파넬로, 마리아 스투아르다 등)이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공연은 호세 카레라스와 콤비가 되어 여러번 공연한 카르멘이다. 발차는 카르멘에서 연약한 여인이 아니라 사랑을 추구하는 당당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페인 출신의 호세 카레라스는 발차와의 공연후 ‘더 이상 완벽한 카르멘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발차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발차는 그의 러페토리에 훼도라(죠르다노), 헤로디아데(마스네), 휘데(예언자) 등을 추가하였다. 주로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의 공연이었다. 1999년 비엔나 특별공연 주간중 발차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를로브스키를 공연하였다. 몇 년만에 처음 맡은 역이었다. 로잘린데나 아델레를 능가하는 공연이었다. 그렇다고 발차가 주역들을 물리치면서까지 공연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며 다만 자기가 맡은 파트에서는 완벽함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2000년, 그는 자기에게 맞는 역할이었으나 오래동안 잊혀져 있었던 역할을 다시 찾아내었다. ‘낙소스의 아리아드네’에서 작곡가 역할이다.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일본 순회공연의 일환이었다. 발차는 15년전인 1985년, 일본에서 같은 역할을 맡아 대성공을 거둔 일이 있다. 일본의 주관기관은 이 사실을 잊지 못하여 발차에게 제발 다시 방문해서 공연하여 줄것을 간청했던 것이다. ‘낙소스의 아리아드네’의 캐스트에는 에디타 그루베로바, 쉐릴 슈투어도 포함되었다.


놀랍게도 발차는 2000/01년 시즌에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 공연하는 스케줄을 잡지 않았다. 30년 슈타츠오퍼와의 관계에서 처음있는 일이었다. 취리히 오페라는 발차에게 막베스(베르디)의 레이디 막베스를 맡아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그는 이 제안을 거절하였다. 대신 스페인 마드리드의 Teatro Real(왕립 오페라 극장)에서 요청한 파르지팔의 쿤드리역은 기꺼이 맡아하였다. 캐스트에는 플라치도 도밍고, 마티 살미넨(Matti Salminen), 프란스 그룬트헤버(Frans Grundheber)등이었다. 쿤드리 역할은 발차로서 대단한 도전이었다. 그것은 메조소프라노로서 독일의 영웅적 소프라노에 대한 도전이었다. 실상 발차는 오래전부터 카라얀과 리카르도 무티로부터 쿤드리를 맡아 볼것을 제안 받았지만 신중한 발차는 사양해 왔었다. 그때까지 발차는 카르멘과 에볼리 공주(돈 카를로)라는 이미지를 심어왔다. 그러한 입장에서 쿤드리를 맡을 경우, 자칫하면 그동안의 경력에 영향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쿤드리에 대한 환영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드디어 마드리드에서 쿤드리를 맡았고 대단한 성공이었다. 메조소프라노로서 바그너 소프라노를 한점의 오차도 없이 훌륭히 해낸 것이다.


발차는 1988년부터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명예멤버로 위촉되어있다. 1922년 발차는 ‘두엣’(Duett)이라는 영화에 출연했다. 발차가 오페라 싱거로 나오는 영화이다. 이렇듯 발차는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레코딩은 별로 많지 않다. 1991년 호세 카레라스와의 오페라 듀엣 CD가 마지막이었다. 2009년으로 65세인 발차는 비엔나에서 슈타츠오퍼 업무를 지원하면서 조용히 살고 있다. 발차는 Songs My Country Taught Me 라는 타이틀의 음반을 낸 것이 있다. 아름답고 애조가 띠어 있는 그리스 민요집이다. Aspri mera ke ya mas(좋은 날이 오겠지요)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래이다.

 

근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