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넓은 음역 Cloe Elmo (클로에 엘모)
20세기 중엽,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찬란한 활동을 했던 클로에 엘모는 드라마틱하며 따듯한 음성으로 사랑을 받은 메조소프라노이다. 그의 음성은 마치 자연적으로 울리는 악기소리와 같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놀랄만한 저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고음에 있어서는 정말로 흥분되는 그러한 음색과 성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노래는 정열과 화염에 넘쳐있었으며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레코드에 전념했던 아티스트가 아니었다. 그러나 유머러스한 미세스 퀴클리(활슈타프) 레코드는 뛰어났다. 엘모는 활슈타프를 세사람의 각각 다른 명지휘자와 함께 취입하였다. 토스카니니, 프릿츠 라이너, 드 사바타였다. 이 레코드로서 그는 메조-콘트랄토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소프라노와 같은 메조소프라노였다.
클로에 엘모는 1909년 이탈리아의 레체(Lecce)에서 채어났다. 그는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음악원을 나왔다. 그러나 졸업후에도 오래동안 그가 소프라노인지 메조인지 분명치 않았다. 그의 성악선생은 엘모를 드라마틱 소프라노로 인정하여 비엔나에서의 성악콩쿠르에 나가도록 했다. 엘모는 1등을 차지했다. 그러나 엘모는 아직 전문인으로서 진출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1935년, 26세때에 산뚜짜로 정식 데뷔하였다. 그러나 정작 오페라 아티스트로 본격적인 인정을 받은 출연은 토리노에서 아달지사(노르마)를 맡은 것이었다. 그로부터 엘모는 가장 바쁜 메조소프라노가 되어 40여 작품에 출연하는 역량을 보여주었다. 라 스칼라 데뷔는 이듬해인 1935년 활슈타프에서 메그 페이지(meg Page)를 맡은 것이었다. 다음으로 맡은 역할은 브라게네(트리스탄과 이졸데), 아주체나(일 트로바토레), 마르타, 오베론, 비토 프라찌(Vito Frazzi)의 ‘리어왕’(Re Lear)등이며 전통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현대 작품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보였다.
엘모는 그후 10여년동안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스위스 등에서 가장 인기있는 메조로서 활동하였으며 2차 대전이 끝난후인 1947년 아주체나로서 메트로에 데뷔하였다. 메트로에서는 산뚜짜, 울리카(가면무도회), 미세스 퀴클리(활슈타프) 등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메트로에서의 공연은 자기가 희망했던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엘모는 메트로의 계약 연장 제안을 마다하고 이탈리아로 돌아와 그로부터는 후진 교육에 점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54년 엘모는 앙카라대학교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엘비라 데 히달고와 쟈니나 아랑기-롬바르디가 맡았었던 자리였다. 엘모는 역량에 비하여 과소평가된 아티ㅡ트였다. 엘모는 에베 스티냐니, 가브리엘라 베산조니, 이렌느 밍기니-카타네오와 함께 현대 이탈리아의 4대 메조소프라노중의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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