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후의 드라마틱 메조 Fiorenza Cossotto (휘오렌짜 코소토)
베르디의 오페라에는 분노에 넘쳐있고 증오에 불타오르는 역할이 간혹 등장한다. 일 트로베토레의 아주체나, 아이다의 암네리스, 막베스의 레이디 막베스, 돈 카를로의 에볼리 등이다. 이들은 비록 주역은 아니지만 무대에서의 존재 자체로서 무대를 압도한다. 이탈리아의 메조소프라노 휘오렌짜 코소토는 바로 이러한 역할에서 따를 사람이 없다. 그의 노래는 허공을 뚫고 저 멀리 갤러리(극장의 제일 꼭대기 좌석)까지 퍼지며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코소토의 음성은 폭이 넓고 강력하다. 그러면서도 부드럽고 따사롭다. 코소토는 성악가 중에서 딕션(가사전달)이 가장 정확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코소토가 가장 사랑하는 역할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산뚜짜, 돈 카를로의 에볼리, 그리고 카르멘이다. 코소토는 중후하나 메조소프라노 역에서 일품이지만 벨칸토 파트에도 뛰어났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로지나(Rosina), 라 화보리타의 레오노라(Leonora), 노르마의 아달지사(Adalgisa), 가면무도회의 울리카(Ulrica)는 코소토가 언제라도 자신 있게 맡을수 있는 벨칸토 메조소프라노의 역할이다. 코소토는 이탈리아 작품이외에도 프랑스작품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벨칸토 메조소프라노는 리릭 메조소프라노에 비하여 아주 드믄 경우이다. 1957년 플랑크의 ‘갈멜파 수녀의 대화’에서 보여준 그의 진지함과 중후함은 앞으로도 그런 예가 없을것이라는 얘기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메조소프라노인 코소토는 1935년 (미렐라 프레니, 루치나오 파바로티와 같은해)에 이탈리아의 크레센티노 디 베르첼리(Crescentino di Vercelli)에서 태어났다. 그는 토리노(튜린)음악원을 최우등으로 졸업하였다. 코소토의 첫 라 스칼라 데뷔는 1955년 베르디의 아주체나(Azucena)로였다. 그는 여러장의 음반을 취입하였다. 그 중에서 레이디 막베스를 맡은 음반은 황금상을 받은 것이다. 그는 196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약 20년을 세계의 오페라 무대에서 베르디 메조소프라노로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그는 3편의 오페라 비디오에 출연하였다. 아이다, 아드리아나 르쿠브로, 일 트로바토레이다. 코소토는 시미오나토의 뒤를 이어, 그리고 돌로라 차지크(Dolora Zajick)에 앞서서 세계 메조소프라노의 역사를 이어나간 사람이다. 2005년 그는 70회 생일을 맞이했다. 벨기에의 루티히(Luttich)에서 코소토를 기리는 특별 연주회가 주선되었고 그는 무대에서 다시한번 지난날의 영화를 보여주었다.
암네리스
코소토와 마리아 칼라스에 관한 에피스드는 아직도 얘기꺼리가 되고있다. 1965년 칼라스와 코소트는 파리 오페라에서 노르마를 함께 공연하였다. 칼라스는 노르마였고 코소토는 아달지사였다. 코소토는 칼라스가 매우 지쳐있어서 음성이 상당히 약해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둘이서 두엣을 부를 때에는 일부러 칼라스보다 음을 길게 끌어서 칼라스의 소리를 카버해주었다. 며칠후 마지막 노르마가 공연되었을때 칼라스의 소리는 거의 최악의 상태였다. 코소토는 칼라스의 소리를 전보다 더 힘을 들여 카버해야했다. 이들의 두엣은 마치 두 사람이 결투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막이 내리자 칼라스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은채 쓰러졌다. 칼라스는 들것에 실려 분장실로 옮겨졌고 커틴콜에 나오지 못하였다.
산뚜짜
'디바·디보의 세계 > 세계의 메조소프라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설적인 카르멘 Gabriella Besanzoni (가브리엘라 베산조니) (0) | 2008.02.28 |
---|---|
완벽한 여신 Frederica von Stade (프레데리카 폰 슈타데) (0) | 2008.02.28 |
최고의 유망주 Fiona MacDonald (휘오나 맥도날드) (0) | 2008.02.28 |
최고의 아주체나 Fedora Barbieri (훼도라 바르비에리) (0) | 2008.02.28 |
금세기 최대의 유망주 Eudora Brown (유도라 브라운) (0) | 2008.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