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메조소프라노

그리스의 여신 Irma Kolassi (이르마 콜라씨)

정준극 2008. 2. 28. 11:48
 

▒ 그리스의 여신 Irma Kolassi (이르마 콜라씨)


그리스인의 후예로서 세계 오페라 무대를 제패한 4인의 디바를 꼽으라면 마리아 칼라스, 아그네사 발차, 디미트라 테오도씨우, 그리고 이르마 콜라씨이다. 하기야 디바라는 수식어가 마리아 칼라스를 표현하기 위해 시작된 것임을 견주어 볼때 그리스인의 혈관속에 흐르는 예술혼은 올림퍼스 신전을 감싸고도 남음이 있다. 이르마 콜라씨는 아테네에서 태어났지만 태어난지 몇 달후 가족을 따라 파리에 와서 살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프랑스어는 콜라씨의 제1외국어가 되었다. 콜라씨로 하여금 음악가의 길을 걷도록 불길을 당긴 사람은 그의 삼촌이었다. 삼촌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유명한 루마니아의 에네스코(Enesco)에게서 바이올린을 공부한 음악가였다. 파리의 콜라씨는 아테네에 있는 삼촌의 집요한 권유에 따라 여덟살도 채 되지 않은 때에 아테네로 돌아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피아노 선생님은 콜라씨의 친할머니였다. 콜라씨는 피아노를 정식으로 공부하기 위해 아테네음악원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그는 14라는 어린 나이에 피아노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을 정도로 피아노에 대한 재능을 보였다. 당시 연주한 곡목은 라벨(Ravel)의 Gaspard de la Nuit라는 어려운 현대곡이었다.


콜라씨는 삼촌의 집에서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Dimitri Mitropoulos)를 여러차례 만났다.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는 나중에 세계 정상의 지휘자가 된 위대한 인물이다. 어쨌든 미트로풀로스는 콜라씨의 훌륭한 음악성에 감동을 받아 당대의 소프라노 매기 카라쟈(Maggie Karadjà)에게 소개해 주었다. 콜라씨는 카라쟈의 문하에서 프랑스 가곡을 접하고 그 심오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젊은 피아니스트인 콜라씨는 노래의 유혹을 견디기 어려웠다. 카라쟈는 콜라씨의 성악 선생으로서 콜라씨 특유의 보컬 테크닉을 완성토록 심혈을 기울여 지도하였다. 마침내 3년후, 콜라씨는 파리성악경연대회에 출전하였고 심사위원 전원일치로 1등상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피아니스트였던 콜라씨는 성악가가 되었고 오페라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로마로 가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2차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공부를 접어둘 수밖에 없어 아테네로 돌아와 몇 번 오페라 무대에 모습을 보였다. 1944년에는 마리아 칼라스와 함께 휘델리오를 공연하기도 했다. 어찌된 일이지 콜라씨는 아테네에서 오페라에 커다란 매력을 느끼지 못하여 대신 성악 선생이 되기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1948년 파리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이때부터가 콜라씨의 오페라에 대한 열정이 봄날의 �꼿처럼 만개하게 되었다. 그는 파리에서 당대의 거의 모든 저명 음악가들과 함께 연주회를 갖는 활동을 하였다. 예를 들면 피에르 몽토, 샤를르 문슈 등이었다.


그는 전례적인 이탈리아와 프랑스 오페라 이외에도 현대작품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다.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무쏘르그스키,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을 공연하여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의 음성은 맑고 빛나며 앞으로 나아가는 톤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의 프레이싱(노래의 각 소절을 표현하는 테크닉)과 딕션(가사를 전달하는 테크닉)에서 대단히 우아함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