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월한 델릴라 Jeanne Gerville-Réache (잔느 제르비유-레아슈)
‘삼손과 델릴라’중에서 델릴라의 아리아 Mon coeur s'ouvre á ta voix는 32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프랑스의 메조소프라노(또는 콘트랄토) 장느 제르비유-레아슈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 그는 1882년 남불의 오르테즈(Orthez)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이었으며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가문이었다. 그는 어린시절의 상당기간을 불령서인도제도(French West Indies)에서 보냈다. 아버지가 외교관이었기 때문이었다. 파리로 돌아온 그는 전설적인 폴랭 비아도르-가르시아(Pauline Viadort-Garcia)에게서 성악을 배웠다. 당시 유명한 소프라노였던 엠마 칼베(Emma Calvé)가 이 젊은 메조/콘트랄토의 첫 오페라 데뷔를 도와주었다. 1899년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글룩의 오르페를 맡은 것이었다. 그가 불과 17세때였다. 이로부터 그는 오페라 코미크의 오페라 출연진으로 1903년까지 머물렀다. 특기할 사항은 이곳에서 그가 ‘플레아와 멜리상드’의 세계초연에서 제네비에브 왕비를 맡아 제네비에브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파리를 중심으로 하여 마리 델나(Marie Delna), 몬테 칼로를 중심으로 하여 블랑셰 드샹-즈인(Blanche Deschamps-Jehin)이 이름을 떨치고 있어서 잔느 제르비유-레아슈로서는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는 브뤼셀, 코벤트 가든, 뉴욕의 맨해튼 오페라에서 여러 역할을 맡아했다. 그 중에서도 델릴라는 참으로 뛰어났다.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1907년 뉴욕 공연에서 보여준 놀라운 재능이었다. 그의 델리라 아리아는 다행히 음반으로 남아 있어서 오늘날 새로운 감동을 주고 있다. 그는 1906년 누욕의 파스퇴르연구소장과 결혼하였으며 1910년부터는 뉴욕에 정착하여 살았다. 그러던중 오스카 햄머슈타인이 사정상 맨해튼 오페라극장을 닫게 되자 그는 미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연주회를 가졌다. 1915년, 그가 32세 때에 제르비유-레아슈는 프토마인병에 걸렸다. 이 병이 발전하여 맹장이 파열되었으며 다시 유산으로 확대되었고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어떤 평론가에는 잔느 제르비유-레아슈가 ‘버건디 포도주 색각의 벨베트로 운끼있게 닦은 최상의 첼로 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그의 죽음을 심히 슬퍼하였다.
델릴라 오르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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