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메조소프라노

메조의 우상 Regina Resnik (레지나 레스니크)

정준극 2008. 2. 28. 13:13
 

▒ 메조의 우상 Regina Resnik (레지나 레스니크)


레지나 레스니크는 194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세계 오페라 무대에 우뚝 솟은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신비할 정도의 능력과 다른 사람이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권위를 지닌 성악가였다. 레스니크는 1922년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2005년 현재 80세가 넘는 고령으로 아직까지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오페라 무대에 본격 진출하게된 것은 2차대전 때문이었다. 1942년 헌터대학을 졸업한 그는 브루클린 음악원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1942년 뉴오페라단에서 공연하는 맥베스에서 레이디 맥베스 역을 맡은 메조가 갑자기 아파서 출연하지 못하게 되자 단 하루 전에 통보를 받고 대역으로 출연함으로서 오페라에 첫 데뷔한다. 전쟁중 메트로폴리탄은 드라마틱 성악가들이 매우 부족하였다. 메트로의 성악가들도 나치와 일제를 물리치기 위해 전쟁터로, 혹은 남편을 전쟁터로 보내고난 가정을 지키기 위해, 혹은 공장이나 관공서에서 후방지원 역할을 하기위해 떠났기 때문이다. 아직 20대의 레스니크는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메트로의 오페라 공연에 파격적으로 출연 요청을 받는다. 일 트로바토레에서의 레오노라였다. 파격적이라는 것은 20대의 젊은 여성이 오페라 주연급으로 출연하는 일은 메트로 연혁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아무튼 레스니크의 레이디 맥베스는 커다란 호평을 받았다.

 


메트로에서의 첫 출연은 일 트로바토레에서 레오노라였다. 이 역할도 원래 진카 밀라노프(Zinka Milanov)가 맡기로 되어있었으나 사정상 출연치 못하게 되어 레스니크가 맡게 된것이다. 처음에 사람들은 소리의 완성도가 부족한 젊은 여성이 저렇게 어려운 역을 소화할수 있을지 걱정하였다. 그러나 청중들은 레스니크의 확실한 음악가적 자세, 충분한 음량과 정확한 음정, 그리고 순수한 표현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특히 레스니크가 무척 성실하게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의 노력을 크게 인정하였다. 어찌보면 레스니크는 무대위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그저 열심히 극장측이 요청하는대로 10여년 동안 소프라노 역할을 맡아했다. 결국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지만 고음을 내는데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고음에서 계속 긴장하게 되어서인지 밝아야 할 소리가 점점 어두워지는 것이었다. 레스니크는 자기의 영역이 메조인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1953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지그린데역을 맡은 것은 그가 드라마틱 소프라노로부터 드라마틱 메조소프라노로 변천하였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후 레스니크는 놀랄만한 재능으로 암네리스(아이다), 카르멘, 마리나(보리스 고두노프), 오르트루트(로엔그린)을 새롭게 창조해 냈다. 클리템네스트라(엘렉트라), 헤로디아데(살로메), 에볼리(돈 카를로), 데임 퀴클리(활슈타프) 역할에 대하여도 대단한 격찬을 받는다. 그리고 그의 바그너 역할은 당대 최고라는 평을 받았다.

 

 

카르멘 


레스니크의 대명사는 카르멘이다.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수 없는 감미롭고 풍요로운 음성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무대를 압도하였다. 레스니크가 자부하고 있는 또 다른 세역은 활슈타프에서 활발하고 재치에 넘친 미쓰 퀴클리, 엘렉트라에서 클리템네스트라,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스페이드의 여왕’에서 노백작부인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레스니크의 무대가 얼마나 넓은지 잘 알수있다. 1971년부터 81년까지 10년동안 레스니크는 남편인 화가 겸 조각가 아르비트 블라타스(Arbit Blatas)와 함께 국제무대에서 10여편의 오페라를 설계하고 감독하였다. 함부르크 슈타츠오퍼에서부터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와 캐나다의 밴쿠버 오페라극장까지 세계를 누볐다. 1987년에 레스니크는 오페라 무대에서 잠시 휴가를 가지고 뮤지컬에 도전한다. 유명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캬바레에서 프라우 슈나이더를 맡은 것이다. 이 공연으로 레스니크는 토니상 후보에 올랐었다. 1990년 뉴욕 시립 오페라에서 공연한 ‘작은 밤의 음악’(A Little Night Music) 역시 대단한 찬사를 받은 것이었다.  그는 실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소프라노에서 메조소프라노가 되어 세계를 압도하였으며 제작자, 연출가, 영화감독, 교육자로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1970년 엘렉트라, 1983년 카르멘, 그리고 1990년의 ‘작은 밤의 음악’이었다. 이들 영화는 주로 PBS의 ‘위대한 공연’ 시간에 방송되었다. 영화감독으로서의 데뷔는 1983년 다큐멘터리 ‘게토’(Gheto)로였다. 역사적인 베니스의 게토를 주제로 삼은 것으로 베니스에서 로케이션을 했다. 2005년 초에는 ‘블라타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감독했다. 남편 블라타스를 기념하여서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는 쿠르트 봐일의 ‘서푼짜리 오페라’에 대한 화가로서의 존경심을 담은 것이다. 레스니크의 모교인 헌터 대학에서 쿠르트 봐일 기념 연주회때 상영되었다. 아마 레스니크만큼 재능이 있는 예술가는 지금까지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굳이 비교한다면 오늘날의 플라치도 도밍고가 가장 비슷할 것이다. 1992년 위대한 예술가 레스니크의 오페라 데뷔 50년 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뉴욕, 베니스, 비엔나 등 지구촌 곳곳에서 열렸다. 그중에서도 모교인 헌터 대학에서의 기념 연주회는 레스니크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넘친 행사였다. 그후 레스니크는 뉴욕 시립 오페라로부터 다이어몬드 상과 로렌스 티베트 상을 받았다. 레지나 레스니크는 1922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모의 매력있는 여인이다. 그리고 요리도 잘했다.

 

 

 금세기 최고의 카르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