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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 콘트랄토 Louise Homer (후이스 호머)

정준극 2008. 2. 28. 13:34
 

▒ 열정적 콘트랄토 Louise Homer (후이스 호머)

 

 암네리스


피츠버그 출신의 미국 콘트랄토 루이스 호머(1871-1947)는 20세기 초반 최고의 암네리스로 찬양을 받은 인물이다. 필라델피아와 보스턴에서 성악 공부를 한 그는 1895년 작곡가 시드니 호머(Sydney Homer)와 결혼하고 파리로 가서 폴 레리(Paul Lhérie)로부터 본격적으로 성악을 전공했다. 폴 레리는 카르멘의 세계 초연에서 돈 호세를 맡아던 유명한 테너였다. 1898년 그는 비쉬(Vichy)에서 레오노레(도니제티의 라 화보리타)를 맡아 오페라에 처음 데뷔했다. 그후 코벤트 가든에서 암네리스와 롤라(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브뤼셀에서 오르트루트(로에느린)과 맛달레나를 맡아 격찬을 받았다. 호머의 메트로 데뷔는 1900년 암네리스로였다. 유명한 소프라노 요한나 가드스키(Johanna Gadski)가 아디다를 맡았고 라다메스는 엔리코 카루소였다. 그로부터 호머는 오랫동안 메트로와 인연을맺으며 찬란한 활동을 하였다.

 

 아주체나

 

그는 메트로에서 처음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오페라에 출연하였으나 얼마후부터는 바그너 역할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1907년 제랄딘 화라와 함께 공연한 스즈키는 아직까지도 화제가 되고 있는 훌륭한 역할이었다. 한편 그는 비교적 현대작품에도 관심을 기울여 1910년 훔퍼딩크의 ‘임금님의 아이들’에서 마녀역할을 처음으로 창조하였다. 1919년(심일운동이 일어난 해), 약 20년간의 메트로 활동을 잠시 중단한 그는 전국을 순방하여 미국의 여러 오페라단들과 공연을 가지기 시작했다. 10년후 메트로로 돌아온 그는 아주체나로서 고별 공연을 장식했다. 그는 결혼하여 여섯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중 딸 하나는 소프라노가 되었고 아들 하나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저명한 작곡가 사무엘 바버(Samuel Barber)는 루이스 호머의 조카이다. 그는 활달하고 열정적인 성악가였다.


 스즈키(나비부인은 제랄딘 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