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테너

최고의 벨칸토 테너 Juan Diego Florénz (후안 디에고 플로렌즈)

정준극 2008. 3. 2. 17:05

최고의 벨칸토 테너 Juan Diego Florénz (후안 디에고 플로렌즈)


 

2003년, 페루정부는 당시 31세의 청년 성악가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를 기념하여 우표를 발행했다. 2솔(Sol)짜리 우표로서 그의 사진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정부가 아직 생존해 있는 인물을, 그것도 젊은 성악가를 기념하는 우표를 발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2007년,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은 당시 34세의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에게 페루 최고훈장인 솔대십자훈장(Gran Cruz de la Orden del Sol del Peru)을 수여했다. 국제적으로 페루의 명예룰 크게 공적 때문이었다. 오늘날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는 비록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페루의 국민적 영웅으로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과연 어떤 인물인가? 1973년 리마에서 태어난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는 오페라 테너로서 특히 벨칸토 테너로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인물이다.

 

 2003년 발행된 페루 우표

 

플로레즈는 어릴 때부터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기타리스트로서 페루 대중가요를 잘 불렀다. 어머니는 주점을 경영했다. 주점에서는 손님들을 위해 생음악을 연주했다. 플로레즈의 아버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점에서 손님들을 위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사업이 번성하자 어머니는 외부에서 인기있는 가수들을 불러와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예전과 같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머니로부터 핀잔을 받고 무대출연 자제령을 받았다. 외부로부터 초청가수들이 사정이 생겨 나오지 못하게 되면 어린 플로레즈가 지명대타자로 무대에 올라가서 마이크를 잡았다. 어린 플로레즈는 닥치는 대로 아무 노래나 잘 불렀다. 페루민요에서부터 재즈와 팝, 심지어 엘비스 프레슬리를 흉내내며 록앤롤을 불렀다. 훗날 플로레즈는 어릴 때의 공연에 대하여 귀중한 경험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오페라 경력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플로레즈는 인기가수가 되고 싶었다. 보는 사람들마나 ‘너 참 노래 잘한다. 이담에 커서 카수가 되거라’라고 말하는 바람에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가수가 되는 꿈을 가졌다. 그러나 어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대중가요를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의 주역으로 출연하여 박수갈채를 받는 오페라 성악가가 되기를 희망했다. 어머니를 지극히 사랑하는 플로레즈는 리마에 있는 국립음악원(Conservatorio Nacional de Musica )에 입학했다. 그때 17세였다. 안드레스 산타 마리아(Andres Santa Maria)는 훌륭한 성악교사였다. 그는 청년 플로레즈의 대중가요적인 음성을 고전음악적으로 다듬어주었다. 얼마후 플로레즈는 페루국립합창단원으로서 모차르트의 대관식미사와 로시니의 작은장엄미사(Petite Messe Solennelle)에서 솔로를 맡아 아름다운 테너의 음성을 빛나게 보여주었다. 안드레스 선생은 플로레즈에게 미국에 가서 공부할 것을 권유하였다. 1993년, 플로레즈는 필라델피아의 커티스음악원(Curtis Institute)에 들어갔다. 플로레즈는 커티스에 재학중에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의 벨칸토 오페라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그는 커티스에서의 경험을 토대로하여 세계적인 벨칸토 테너로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한편, 플로레즈는 커티스에 재학하면서 위대한 메조소프라노인 산타 바바라음악원의 마릴린 혼(Marilyn Horne)으로부터도 레슨을 받았다.


어느날 페루출신의 테너로서 이탈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에르네스토 팔라치오(Ernesto Palacio)가 플로레즈에게 이탈리아에 와서 그와 함께 오페라 레코딩에 참여해 줄것을 요청했다. 첫 번째 레코딩은 빈센테 마르틴(Vincente Martin)의 ‘일 튜토레 불라토’(Il Tutore Burlato)라는 오페라였다. 플로레즈는 천부적인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며 레코딩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로부터 팔라치오는 플로레즈의 후원자 겸 지도교사 겸 매니저로서 플로레즈의 앞날을 위해 크게 도와주었다. 팔라치오는 플로레즈에게 있어서 은사 겸 은인이었다.

 

 

플로레즈가 처음으로 공식 오페라에 데뷔한 것은 1996년 페사로(Pesaro)에서 열린 로시니페스티발에서였다. 페사로는 로시니가 태어난 곳이다. 플로레즈는 로시니페스티발에서 ‘샤브란의 마틸데’(Matilde di Shabran)의 주역을 맡은 테너 브루스 포드(Bruce Ford)가 갑자기 아픈 바람에 출연하지 못하자 얼떨결에 팔라치오의 추천을 받아 대신 출연하게 되었다. 머나먼 남미의 페루에서 온 약관의 플로레즈에 대하여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때 그는 23세였다. 그 해에 플로레즈는 라 스칼라에 출연하는 행운을 잡았다. 마침 로시니페스티발에 왔던 라 스칼라 음악감독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잘 생긴 얼굴, 훤칠한 키, 아름다운 음성, 정확한 가사, 그리고 자연스러운 연기....무엇하나 흠잡을데 없는 신인을 발굴한 것이었다. 플로레즈가 라 스칼라에서 첫 번째로 맡은 역할은 글룩의 아르미데(Armide)에서 슈발리에였다. 이듬해인 1997년, 플로레즈는 코벤트 가든의 초청을 받았다. 도니체티의 ‘엘리사베타’의 세계초연이었다. 플로레즈는 엘리사베타에서 포토스키백작 역을 맡았다. 코벤트 가든은 새로운 스타의 출현에 흥분했다.

 

이어서 1999년에는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알마비바 백작을 맡아 갈채를 받았다. 다. 비엔나 진출을 마치 오페라 성악가의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것과 같은 뜻 깊은 것이었다. 2002년에는 메트로폴리탄에서 또다시 알마비바 백작을 맡아 뉴욕의 오페라계를 놀라게 했다. 메트로의 밤은 플로레즈로서 매우 감격스러운 것이었다. 남들은 10년이 걸려도 메츠에서 주역을 맡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그는 커티스 출신으로 불과 몇 년만에 메츠를 압도했기 때문이었다. 플로레즈는 2007년 2월 20일 라 스칼라에서 도니체티의 ‘연대의 딸’에서 주역인 토니오를 맡았다. 토니오의 역할은 벨칸토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으로 알려진 것이지만 플로레즈로서는 파바로티 이후 최고의 토니오라는 찬사를 받았다. 토니오의 아리아인 ‘아, 나의 친구’(Ah! mes amis)는 하이C 음을 무려 9번이나 내야하는 힘든 곡이다. 웬만한 테너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가 힘든 역할이다. 플로레즈가 ‘아, 나의 친구’(Ah! mes amis, quel jour de fete!)를 놀랄만한 음성으로 완벽하게 부르자 관중들은 모두 기립하여 박수를 보내며 앙코르를 외쳤다. 이날 플로레즈는 ‘노 앙코르’라는 라 스칼라의 74년 전통을 깨고 앙코르를 불러 관중들의 환호에 보답하였다. 이듬해인 2008년 4월, 플로레즈는 메츠에서 다시한번 토니오를 맡았고 이때에도 관중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여 ‘아, 나의 친구’를 앙코르로 불렀다. 메트로의 역사상 1994년 이래로 공연 중에 처음으로 앙코르가 불려진 것이었다.

 

'연대의 딸'에서 토니오

 

플로레즈는 콘서트에서도 활발하다. 북미, 남미, 유럽 어느 곳이든 콘서트 무대가 있으면 마다하지 않았다. 런던의 위그모어 홀(Wigmore Hall), 파리의 샹젤리제극장(Theatre des Champs-Elysees), 뉴욕의 링컨센터와 미드타운 맨하튼의 카네기홀, 바르셀로나의 팔라우 데 라 무지카(Palau de la Musica), 리마의 테아트로 세구라(Teatre Segura),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 등에서 콘서트를 가졌다. 2005년 베를린에서의 라이브 콘서트에서는 마지막 곡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인 카루셀의 주제곡인 You'll Never Walk Alone을 불러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콘서트에서의 플로레즈


플로레즈는 현재까지 6개의 솔로 리사이틀 CD를 내놓았다. 모두 데카 라벨이다. ‘로시니 아리아’집은 2003년도 칸느 클래식상을 받았다. 2004년 칸느 클래식상에서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로서 상을 받았다. ‘위대한 테너 아리아’(Great Teno rAria)집은 2005년도 에코 클래식상을 받았다. 이밖에 Sentimiento Latino, Arias for Rubini, Bel Canto Sepctacular라는 타이틀의 CD들이 있다. 플로레즈는 2007년 4월 독일 태생의 율리아 트라페(Julia Trappe)와 비엔나에서 결혼했다. 성당에서의 혼배성사는 이듬해 4월 리마에서 가졌다. 페루 대통령 알란 가르시아 등 유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하는 대규모 결혼식이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알마비바백작. 로지나는 소프라노 다이아나 담라우(Diana Damrau)


플로레즈는 수많은 상과 훈장을 받았다. 예를 들면 앞에서 언급한 솔대십자훈장을 비롯하여 리마시 공로훈장 등이다. 음악계로부터 받은 상도 많다. 2000년 이탈리아 평론가협회가 최고의 성악가에게 주는 프레모 아비아티(Premo Abbiati)를 받았으며 이밖에 ‘로시니 황금상’, ‘타마뇨 상’, 2001년 라 스칼라에서의 ‘몽유병자’ 공연으로 Migliore Tenore에게 주는 오페라상을 받았다. 플로레즈의 음성은 어떠한가? 뛰어난 아름다움을 지닌 레지에로 테너이다. 성량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선천적으로 고주파 음성이므로 아무리 큰 극장이라고 해도 저 멀리 뒤편에까지 소리가 잘 들린다. 음역은 2 옥타브이며 고음은 하이 D 까지 무리없이 낼수 있다. 그러나 벨리니의 아리아 Alludir de padre afflito에서는 하이 E플랫까지 무난히 냈다. 발성의 특징은 두성과 흉성을 완전하게 종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싸지오(Passaggio)에서 소리가 끊어지는 경우가 없다. 그런가하면 호흡이 대단히 길다. 아무리 긴 호흡을 요구하는 노래라고 해도 플로레즈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벨칸토의 특징인 장식음, 즉 트릴은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하다. 플로레즈의 음성을 굳이 분류하자면 콜로라투라 테너이다. '연대의 딸'에서 토니오, 세미라미데(Semiramide)에서 이드레노(Idreno)역과 ‘샤브란의 마틸데’에서 코라디노(Corradino)역은 콜로라투라 테너의 가장 훌륭한 예이다. 어느때 플로레즈는 바르셀로나에서 에디타 그루베로바와 함께 세미라미데의 콘서트 연주회를 가진 일이 있다. 그루베로바는 세계 정상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였고 플로레즈는 아직 젊은 청년에 불과했지만 그루베로바의 상대역으로 아무런 손색이 없었다. 그루베로바는 플로레즈에게 ‘최고의 테너’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오리백작'에서 백작


플로레즈는 벨리니, 도니체티, 로시니의 오페라에 가장 많이 출연했다. 벨리니의 오페라로서는 ‘캬퓰레티가와 몬테키가’(테발도), ‘청교도’(아르투로), ‘몽유병자’(엘비노)에 출연했고 도니체티의 작품으로서는 ‘돈 파스쿠알레’(에르네스토), 엘리사베타(포토스키백작), ‘사랑의 묘약’(네모리노), ‘연대의 딸’(토니오), ‘마리아 스투아르다’(레이체스터)를 맡았다. 로시니의 오페라로서는 ‘세빌리아의 이발사’(알마비바백작), 라 체네렌톨라(돈 라미로),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린도로), ‘샤브란의 마틸데’(코라디노), ‘시뇨르 브루스키노’(플로르빌), 세미라미데(이드레노), ‘오리백작’(백작), 오텔로(로드리고), ‘호수의 여인’(자코모5세), ‘렝스로의 여행’(벨피오레)이 있다. 이밖에 베르디의 리골레토에서 만투아공작도 자주 맡아하는 역할이다. 

 

'렝스로의 여행'에서 벨피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