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시니가 선정한 백작 Manuel Garcia (마누엘 가르시아)
마누엘 가르시아(1775-1832)는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스페인의 테너이다. 그는 특히 모차르트와 로시니의 테너로서 이름을 떨쳤다.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스페인 초연에서 알마비바 백작을 맡았던 것은 그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커다란 역사적 영광이었다. 실제로 로시니는 마누엘 가르시아를 염두에 두고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작곡했다고 한다. 그는 1820년대에 마드리드뿐만 아니라 파리, 런던, 뉴욕(1825년), 멕시코시티(1827년) 등 세계의 주요 오페라극장을 열광시킨 뛰어난 테너였다. 그는 테너이면서 작곡가였다. 그의 초기 오페레타(차르추엘라)는 마드리드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으며 그 후에 내놓은 ‘바그다드의 칼리프’(Il Califfo Di Bagdad)는 나폴리와 파리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또 다른 오페레타인 La mort du Tasse는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었으며 이로서 가르시아는 작곡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의 스페인 스토리의 오페레타들은 프랑스 낭만주의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조르즈 상드(Georges Sand), 빅토르 위고(Victor Hugo) 등의 작품,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비제의 카르멘에 영향을 주었다. 가르시아는 성악 교사로서 뛰어났다. 그의 제자중에는 테너 아돌프 누리트(Adolphe Nouritt), 그리고 자기의 세자녀, 즉 나중에 세계적 디바가 된 마리아 말리브란, 역시 소프라노였던 폴랭 비아르도-가르시아(Pauline Viardot-Garcia), 테너였던 아들 마누엘 파트리치오 가르시아가 제자였다. 그는 1832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나중에 파리 예술계의 중심에서 활동했던 큰딸 폴랭이 불과 열살 때였다. 마누엘 가르시아의 부인 역시 성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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