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테너

말타의 영웅 Oreste Kirkop (오레스테 키르콥)

정준극 2008. 3. 2. 17:31
 

▒ 말타의 영웅 Oreste Kirkop (오레스테 키르콥)

 

 

오레스테 키르콥과 같은 훌륭한 테너는 정말 특이한 경우이다. 그의 음성은 뛰어난 음악성과 지성, 그리고 놀라운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극도로 다이나믹하며 힘을 들여야 하는 경우에도 작열하는 듯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오레스테 키르콥은 1950년대를 주름잡은 지중해의 작은 섬 말타의 노래하는 대사였다. 1923년 말타의 함룬(hamrun)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말타의 테너 니콜로 발다키노(Nicolo Maldacchino)에게 발견되어 그에게서 훈련을 받은 키르콥은 나중에 밀라노에서 여러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아 그의 음성을 완성했다. 이로서 키르콥은 2차대전후 가장 뛰어난 테너로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첫 오페라 데뷔는 1945년 말타에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투리두를 맡은 것이었다. 투리두로서 대성공을 거둔 키르콥은 이어 나비부인, 라 화보리타, 루치아, 파우스트, 토스카, 그리고 말타의 오페라 Figlio del Sole에 출연하여 정상의 인기를 차지하였다. 1948년 12월 23일은 그에게 있어서 특별한 날이었다. 이탈리아의 발테타(Valletta)극장에서 리골레토가 공연되고 있었다. 키르콥은 객석에서 관람하고 있었다. 2막이 끝나고 잠시 휴식 시간에 극장의 음악감독이 객석의 기르콥을 찾아왔다. 만토바 공작을 맡은 테너가 무슨 연유인지 2막을 끝내고 더 이상 못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당황한 중에도 급히 대타를 찾던중 객석에 키르콥이 앉아 있다는 얘기를 듣고 3막부터 만토바 공작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찾아왔던 것이다. 이날 저녁 키르콥의 무대출연은 놀라운 감동을 준것이었다. 특히 마지막 막에서의 La donna é mobile는 아름답고 시원한 고음과 함께 최상의 아리아였다. 관중들이 발을 구르며 환호하고 박수를 보내는 바람에 공연은 한동안 중단되어야 했다. 관중들의 앙코르 때문에 키르콥은 다시한번 La donne...를 불렀다. 다음날 신문들은 말타의 테너인 키르콥의 얘기를 대서특필하였다. 리골레토에서 키르콥의 성공은 이후 말타 출신 성악가들이 이탈리아 무대로 진출하는 문을 열어준 것이었다.

 


1949년에서 1950년까지 키르콥은 라 스칼라의 유명한 아티스트들과 연주회를 가졌다. 키르콥은 바리톤 티토 고비(Tito Gobbi), 소프라노 마리아 카닐리아(Maria Cagnilia)와 같은 쟁쟁한 성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한편, 말타가 낳은 바리톤 죠세프 사타리아노(Joseph Satariano: 1895-1992)가 1950년 여름 말타를 방문한 일이 있다. 사타리아노는 샬리아핀, 넬리 멜바, 티토 스키파 등과 함께 유럽의 오페라 무대를 압도하고 있는 위대한 오페라 아티스트였다. 이 때쯤하여 키르콥은 말타에서 10여 역할을 맡으며 150회 이상의 오페라 공연으로 명성을 얻고 있었다. 사타리아노는 키르콥의 노래를 듣고 나서 무척 감동하여 런던의 카를 로사(Carl Rosa)오페라단에 소개하였다. 그해 9월, 키르콥은 리즈(Leeds)의 대극장에서 만토바 공작으로 영국무대에 데뷔하였다. 요크셔 이브닝지는 ‘제2의 카루소가 나타났다. 말타의 젊은 테너가 영국을 점령했다’고 썼다. 키르콥은 체격적으로나 얼굴 모습으로나 당당하고 훤칠했다. 영국의 오페라 팬들은 키르콥의 이름을 쉴사이 없이 연호했다. 명지휘자 말콤 사젠트경(Sir Malcom Sargent)조차 키르콥에 대하여 ‘이 사람은 관중들을 기쁘게 해주는 재능이 있다. 더구나 이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음성을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놀라운 테너이다’라고 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데일리 익스프레스(Daily Express)는 ‘좋은 음성을 가진 테너를 찾기는 어렵다. 키르콥의 음성은 확고하고 풍성하다. 마치 맛있는 스테이크와 같다’라고 말했다. 오페라잡지(Opera Magazine)는 ‘근래에 보기드믄 카바라도씨이다. 1938년에 베냐미노 질리의 카바라도씨 이후 최고의 테너이다. 그의 노래는 참으로 아름답다’고 썼다.

 

 리골레토에서 만투아 공작


영국은 1953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을 앞두고 있었다. 영국은 런던 팔라디엄(Palladium)에서 영연방 갈라 축하연주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세계에 방송된 갈라연주회에서 키르콥은 사회자의 설명대로 ‘영웅적이며 역사적인 말타 섬을 대표하여’ 오페라 아리아를 불렀다. 말타는 키르콥으로 인하여 세계의 박수를 받을수 있었다. 이후 그는 BBC의 단골 테너가 되었다. 얼마후 그는 다시한번 영국 신문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였다. 새들러 웰스(Saddler Wells)에서 75년만에 다시 공연된 베르디의 루이자 밀러에서 주역을 맡아 대단한 역량을 보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