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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의 황태자 Nicolai Gedda (니콜라이 겟다)

정준극 2008. 3. 2. 17:31
 

▒ 테너의 황태자 Nicolai Gedda (니콜라이 겟다)

 


스웨덴 출신의 니콜라이 겟다(1925년 7월 11일생)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테너중의 한사람으로서 가장 레코딩을 많이 한 재능있는 테너로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약 2백회의 레코딩 기록을 가지고 있다. 겟다는 이탈리아 스타일의 음색이나 기교는 약간 부족하다는 말을 듣지만 그래도 아름다우면서도 힘있는 음성과 매력적인 음색으로 세계 최고의 테너의 자리를 차지하는데 손색이 없다. 특히 네모리노(사랑의 묘약)는 더 이상의 경쟁자가 없다고 할 정도로 뛰어났다. 그는 평소 약 60여 오페라 역할을 맡아 했다. 그의 역할은 대단히 폭이 넓어서 라모에서부터 쇼스타코비치에까지 이른다. 그는 스웨덴 어머니와 러시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돈 코사크(Don Cossack) 합창단의 베이스였고 러시아 정교회의 성가대 지휘자였다. 어학에 재능이 있는 겟다는 스웨덴어와 러시아어는 물론이고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그리고 라틴어에 능숙하였다. 겟다는 사정상 처음부터 테너로 활동하지 않았다. 지방 은행에서 창구직원으로 일했다. 어느날 어떤 부자 고객이 은행에 찾아 왔을 때 겟다는 그에게 성악 공부를 하여 성악가가 되고 싶다는 자기의 포부를 얘기했다. 그 부자 고객은 당장 겟다의 레슨비를 대 줄테니 공부하라고 약속하고 유명한 테너 칼 마틴 외만(Karl Martin Öhmann)에게 소개해 주었다. 외만은 1920년대에 바그너 테너로서 이름을 떨쳤던 사람으로 유씨 비욜링을 발굴한 사람이었다.

 

집시남작


1952년, 그가는 27세 때에 로열 스웨덴 오페라에 아돌프 아담(Adolph Adam)의 Le Postillon Di Langjumeau에서 Chapleon을 맡아 데뷔하였다. 같은해에 그는 오펜바gm의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니클라우스를 맡았으며 ‘장미의 기사’에도 출연하였다. 이듬해 그는 스톡홀름의 오디션에서 허버트 폰 카라얀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카라얀은 그를 이탈리아로 데려갔다. 그해에 겟다는 라 스칼라에서 돈 조반니의 돈 오타비오로 데뷔하여 뛰어난 테너로서 찬사를 받았다. 이어 그는 파리 오페라에 데뷔하여 베버의 오베론 등으로 격찬을 받아 3년 동안 파리에서 활동하였고 1957년에는 메트로에 진출하여 구노의 파우스트에서 타이틀 롤을 맡아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후 그는 메트로에서 26년 동안 28 역할을 맡았으며 그 중에는 사무엘 바버의 바네싸 세계 초연, 메노티의 ‘마지막 야만인’(The Last Savage)의 세계 초연도 포함된다. 한편 코벤트 가든 데뷔는 1954년 리골레토에서 만토바 공작이었다. 특히 유씨 비욜링과 마찬가지로 ‘가면무도회’에서 스웨덴국왕 구스타프 3세를 맡은 것은 뜨거운 갈채를 받은 기록적인 것이었다.

 

가면무도회


겟다는 오페라 출연이외에도 리사이틀리스트로서 괄목할 만한 활동을 하였다. 그의 레퍼토리는 프랑스, 독일, 스캔디나비안, 러시아의 예술가곡을 망라하였다. 겟다는 성악가로서는 드물게 70대 까지 활동을 했다. 2001년 그는 쥬세페 디 스테파노의 경우에서처럼 투란도트에서 알툼 황제를 맡아 마지막 오페라 무대를 장식하였다.

 

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