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스본의 영광 Tomaz Alcaide (토마즈 알카이데)
1901년 포르투갈의 에스트레모즈(Estremoz)에서 태어난 테너 토마즈 알카이데(토마드 데 아퀴노 카르멜로 알카이데)는 원래 리스본의 사관학교에 들어갔다가 얼마후 코임브라(Coimbra)대학교로 전학하여 약학을 공부했다. 동시에 그는 성악에 뜻을 두어 리스본에서 유제니아 만텔리(Eugenia Mantelli)에게 본격적인 레슨을 받았다. 1923년 그는 리스본의 산 카를로(San Carlo) 극장에서 리골레토의 만토바 공작을 맡은 테너가 아파서 공연하지 못하게 되자 우연한 기회에 대신 공연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공식적인 오페라 데뷔는 1925년 밀라노의 카르카노(Carcano)극장에서 토마의 미뇽(Mignon)중 구글리엘모(Guglielmo)를 맡은 것이었다. 알카이데는 리스본에서 대역으로 만토바 공작을 맡은 후에 본격적으로 오페라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밀라노로 왔다. 밀라노에서는 당대의 훼르난도 훼라라(Fernando Ferrara)에게 사사했다. 그리고 미뇽의 주역으로 출연하게 된 것이다. 미뇽은 알카이데를 이탈리아와 유럽으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어준 것이었다. 그는 만토바 공작 이외에도 로돌포(라 보엠), 파우스트 등으로 인기의 가도를 달렸다. 대망의 라 스칼라에 데뷔한 것은 1930년이었다. 카사볼라(Casavola)의 Il Gobbo del Califfo에 출연한 것이었다. 이듬해 그는 다시 라 스칼라에서 훔퍼딩크의 ‘임금님의 아이들’(Königskinder)에 출연하였다. 관중들은 거의 열광적이었다.
알카이데의 명성은 1931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서 정상으로 올라갔다. 돈 파스쿠알레에서 에르네스토(Ernesto)를 맡은 것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어 로마에서는 클라우디아 무치오(Claudia Muzio)의 상대역으로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를 맡았으며 역시 무치오의 상대역으로 몬테 칼로에서 루치아의 에드가르도, 리골레토의 공작, 나비부인의 핀커튼을 맡아 당대 최고의 테너로서 인정을 받았다. 프랑스에서는 마스네의 마농과 베르테르, 그리고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와 죠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를 맡아 더 할수 없는 인기를 끌었다. 알카이데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최고의 성공을 거둔후 고국인 포르투갈, 그리고 스페인에 돌아와 이번에는 차르추엘라와 오페레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하였다.
그는 1936년 프랑스로 건너가 오페라 코미크에서 카바라도씨(토스카)와 로돌포(라 보엠)로서 대단한 찬사를 받았다. 몇 년후 제2차 대전이 터지자 그는 유럽에서의 활동을 중지하고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테아트로 콜론과 상 파울로의 테아트로 무니치팔, 리오데쟈네이로의 오페라에서 거의 신화적인 존재로서 군림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콘서트 활동을 하였고 1939년 마침내 리스본으로 되돌아왔다. 리스본에서 그는 방송국의 오페라 해설자로 활동하는 한편 리스본의 테아트로 트리니다데(Teatro Trinidade)의 오페라 감독으로 오페라 제작에 전념하였다. 리스본의 밤은 알카이데 때문에 더욱 감미로워졌고 더욱 밝아졌다. 1952년 리스본에서 마지막으로 오페라에 출연한 무대에서 은퇴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51세 때였다. 그는 1967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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