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쇼이의 수퍼 테너 Vladimir Atlanov (블라디미르 아틀라노브)
2005년 2월 19일 러시아의 뛰어난 오페라 테너 블라디미프 아틀라노브는 65회 생일을 맞이하였다. ‘초일류의 스타’ ‘수퍼 테너’ ‘황금의 소리’ ‘위대한 카루소의 후계자’라고 불리는 아틀라노브는 볼쇼이, 마린스키, 라 스칼라, 코벤트 가든, 비엔나 슈타츠오퍼,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등 세계 굴지의 오페라극장에 출연하여 열화와 같은 갈채를 받았다. 그는 가장 전성기에 무대를 떠났다. 1999년에 마지막 오페라 공연을 가진후 가끔 연주회를 갖는 것 이외에는 주로 마스터 클라스에 전념하고 있다. 그러나 수백만 오페라 팬들에게는 아직도 20세기 최고 테너중의 한 사람으로서 기억되고 있다. 특히 그의 오텔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할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아틀라노브는 슬라브 테너와 이탈리아 벨칸토의 모든 장점을 지니고 있는 테너이다. 그의 소리는 부드럽고 감미로우며 원숙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적인 힘을 보여주는 음색을 지니고 있다. 또한 놀랄만한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음악과 이탈리아 음악에서 똑같이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가 특별히 선호하는 역할은 삶과 죽음의 건널목에서 강력하고도 열정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역할들이다. 그는 러시아의 심리학적 무대를 개발하고 풍부하게 농축하였다. 따라서 그가 이고르 공, 보리스 고두노프와 같은 강렬한 성격의 역할은 물론, 오텔로와 같은 놀라운 열정의 역할을 풍부하고 감정적인 표현으로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였음은 경외로운 일이었다. 무대에서 그의 손짓 하나하나, 얼굴의 표정 하나하나는 바로 살아있는 주인공이었다. 그는 다만 찬란한 테너가 아니라 노래하는 배우였다.
오텔로
아틀라노브의 스타돔 경력은 로케트 발사와 비교할수 있다. 1939년 생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생 페테르부르크음악원을 다녔으며 학생일때에 이미 마린스키 극장의 초청을 받아 출연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는 1966년 모스크바 국제차이코브스키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였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는 모스크바의 볼쇼이에서 20여년간 무대를 압도는 뛰어난 활동을 하였다. 그가 정상의 테너로서 활동할 때에 10여개 유명 오페라극장이 동시에 그를 초청하느라고 열광하였던 것은 잘 알려진 일이었다. 비엔나 슈타츠오퍼는 그가 갑자기 은퇴하기 직전의 3년동안 정기적으로 출연하였던 무대였다. 생 페테르부르크(당시는 레닌그라드)음악원에 다니던 때인 1959년, 음악원장인 다른 교수들과 학생들에 대하여 협의를 하던중 아틀라노브는 베이스로서 특별한 진전이 없으므로 성악을 그만두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낸바 있다. 원장은 아틀라노브에 대하여 ‘이 학생은 어느날은 베이스라고 했다고 다음날에는 테너라고 하며 테너 아리아를 연습하는데 이건 곤란하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마리오 란자가 되겠다고 주장한다. 어디 세상일이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인가? 자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학생은 공부할 자격이 없다. 게으를 뿐만 아니라 뽐내기만 한다’고 까지 말하였다. 그러나 그의 지도교수는 그가 베이스-바리톤이 아니라 테너라는 것을 발견하고 간신히 원장을 설득하여 테너로서 방향을 바꾸도록 해주었다. 4학년일 때 그는 마린스키극장(당시는 키로프극장)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다. 그의 찬란하고 강력한 테너음성은 그 넓은 홀의 가장 높은 구석까지 당당하게 울려 퍼졌다.
볼쇼이에서 그는 마스카니, 레온카발로, 푸치니 등 이탈리아 작품의 리리코-드라마틱 역할을 맡아 하였다. 그중에서 토스카의 카바라도씨를 맡은 것은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이로 인하여 그는 벨칸토의 고향인 밀라노의 초청을 받았다. 1978년 밀라노의 라 스칼라 데뷔는 오텔로였다. 일찍이 표도르 샬리아핀이 라 스칼라에서 거둔 성공을 훨씬 웃도는 대성공이었다. 그는 그때 상대역인 데스데모나를 맡은 타마라 밀라슈키나(Tamara Milashkina)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밀라슈키나의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부드러운 음성은 아틀라노브의 강력하고도 열정에 넘친 소리와 어울려 최고의 콤비를 이루었다. 더구나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있었으므로 무대에서 두 사람의 사랑의 장면은 특별한 감흥을 주었다. 아무튼 곧이어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밀라노의 오텔로 성공으로 아틀라노브는 뮌헨, 런던, 베로나 등 곳곳으로부터 오텔로 출연을 요청받았고 이로서 그는 국제적인 수퍼스타가 되었다. 한편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은 주역 테너인 아틀라노프가 빈번하게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여간 속상하지 않을수 없었다. 유럽의 다른 극장과는 달리 볼쇼이는 하나의 오페라를 며칠동안 계속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므로 며칠동안 계속 주역 테너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안심인 형편이었다. 아틀라노브는 미안하지만 볼쇼이의 아무런 양해도 받지 않고 슬며시 유럽의 다른 극장에 출연하는 일이 잦았다. 결국 볼쇼이는 아틀라노브를 해고하였다. 12년 동안의 볼쇼이 스타는 이렇게 하여 러시아를 떠나 비엔나에 정착하였다. 비엔나에서 그는 부인인 밀라슈키나와 함께 1990년대 말 은퇴할때까지 오페라 공연과 레코딩을 하였다. 두 사람의 두엣 레코딩은 아직도 사랑받고 있는 음반이다. 그는 현재까지 다시는 모스크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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