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테너

영원한 로엔그린 Walter Widdop (월터 위돕)

정준극 2008. 3. 2. 17:52

 

▒ 영원한 로엔그린 Walter Widdop (월터 위돕)

 

 

월터 위돕은 1892년 영국 요커셔어 할리팍스 부근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했던 그는 12살 때에 방직공작에서 일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어려운 생활이었지만 그는 부모를 따라 교회에 열심히 다녔으며 교회 성가대로서 오라토리오의 솔리스트로 활동하였다. 1914년, 1차 대전이 터지자 그는 육군에 입대하여 종군하였으며 전쟁이 끝난 한참 후인 1922년까지 음악 공부를 하지 못했다. 공장에서 힘든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지내던 그는 마침내 음악가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당시 유명한 음악 교사였던 아더 힌치클리프(Arthur Hinchcliff)로부터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 넉넉지 못한 그로서는 유명한 선생님으로부터 레슨을 받는 것이 여간 힘에 겨운 일이 아니었다. 이어 그는 유명한 영국 베이스인 노만 알린(Norman Allin)으로부터 사사했다. 그의 타고난 재능은 서서히 닦여지지 시작했다. 바리톤 딘 질리(Dinh Gilly)에게서 오페라에 대한 교습을 잠시 받은후 그는 마침내 1923년 리즈(Leeds)에 있는 영국국립오페라에서 라다메스(아이다)로 무대에 올라섰다. 극장안에서 멀찍이 앉아있던 그의 부모는 아들이 이집트 개선장군으로 당당히 높이 서서 나타나자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 이듬해 그는 코벤트 가든에서 지그프리트를 맡아 열연하여 갈채를 받았다. 모든 사람들은 영국에 영웅테너가 등장한데 대하여 자부심과 함께 찬사를 보냈다.

 

지그문트


윌돕의 레퍼토리는 지그프리트, 지그문트, 트리스탄, 탄호이저, 삼손, 르노(글룩의 아르미드) 등이었다. 그는 구슨스(Goossens)의 주디트(Judith)에서 바고아스(Bagoas)의 이미지를 처음으로 창조하였다. 그리고 1936년에는 스트라빈스키의 외디푸스 렉스의 영국 초연에서 타이틀 롤을 맡았다. 윌돕은 영국을 압도하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것으로 만족할수는 없었다. 그는 스페인, 네덜란드, 그리고 미국으로 진출하여 오페라에 출연하였다. 하지만 영국이 우선이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바그너의 역할로 찬사를 받았다. 그러한 그에 대하여 영국의 어떤 신문들은 ‘튜톤이 아리안을 살해하다’라고 쓸 정도로 윌돕의 활동에 대하여 대단한 의미를 두었다. 윌돕이 독일의 오페라 극장에서 바그너를 맡아 공연했을 때, 영국의 어떤 신문은 ‘독일에는 2백여개의 오페라 극장이 있다. 그 중에서 윌돕이 출연한 극장은 신이 보내준 선물이다. 감격해야 한다’라고 썼다. 한편, 그는 오라토리오 테너로서도 뛰어났다. 하지만 영국의 신문들은 ‘그가 메시아나 부르면서 이곳저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그는 로엔그린과 탄호이저, 지그프리트와 파르지팔을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아무튼 2년 남짓, 독일에서 활동하면서 그는 유럽의 가장 뛰어난 영웅 테너 4명중의 한사람으로 인정을 받았다. 윌돕의 마지막은 로엔그린처럼 비극적이었다. 1949년 런던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아드리안 불트경의 지휘로 로엔그린을 공연할 때 마지막 장면인 로엔그린과 엘자의 이별장면을 끝내고 분장실로 돌아온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겼으나 다음날 아침 숨을 거두었다.

 

지그프리트 1985 코벤트 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