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바리톤

비극 역할의 주역 Arthur Endrèze (아서 앙드레즈)

정준극 2008. 3. 2. 22:54
 

▒ 비극 역할의 주역 Arthur Endrèze (아서 앙드레즈)

 

 

아서 앙드레즈는 1893년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오페라 활동은 프랑스에서 했다. 원래 이름은 아르투르 앙드레즈 크랙커만(Arthur Endreze Crackermann)이었다. 아버지의 할아버지 쪽은 독일 계통이었고 어머니의 할아버지 쪽은 프랑스 계통이어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일리노이주의 어떤 농장에서 일하며 일리노이대학에서 농학을 공부하였다. 그러면서도 뛰어난 노래솜씨로 주위 사람들의 기쁘게 해주었다. 어느 날, 유명한 지휘자 발터 담로슈(Walter Damrosch)가 우연히 앙드레즈의 노래를 듣고 그 아름다운 음성에 깊은 인상을 받아 프랑스로 가서 본격 공부하라고 적극 권장하였다. 몇 년후 앙드레즈는 파리의 퐁텐블로에 있는 미국음악아카데미에 입학할수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3년동안 유명한 장 드 레즈케(Jean de Reszke)의 가르침을 받았다. 앙드레즈의 첫 오페라 데뷔는 1925년, 좀 늦은 감이 있는 32세 때에 니스 오페라하우스에서 돈 조반니로였다. 마침 앙드레즈의 공연을 본 작곡자 겸 바리톤인 레이날도 한(Raynaldo Hahn)이 앙드레즈의 뛰어난 바리톤 음성에 감동하여 그를 칸느, 도빌등의 여러 오페라 극장에 소개하여 출연토록 했다. 그로부터 3년후인 1928년, 안드레즈는 드디어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에 진출하는 기회를 가졌다. 첫 번째 맡은 역할은 랄로(Lalo)의 Le Roi d'Ys에서 카르나크(Karnack)였다. 같은 해에 그는 프랑스 제일의 오페라 극장인 그랑 오페라(Grand Opéra: 갸르니에 오페라극장)에서 ‘파우스트’의 발랜탱(Valentin)으로 데뷔하였으며 이후 프랑스에서 현대 오페라가 초연되면 먹던 밥도 싸들고 가서 여러 역할을 맡으며 위대한 경력을 쌓아갔다. 가장 성공을 거둔 초연 역할은 마그나르(Magnard)의 ‘게르케르’(Guecoeur)의 타이틀 롤, 소게(Sauguet)의 ‘La Chartreuse de Parme’, 미요(Milhaud)의 ‘막시밀리앙’(Maximilien), 바슐레(Bachelet)의 ‘Un Jardin sur l'Oronte’(오론테 정원) 등에서 바리톤 역할이었다.

 

이아고

안드레즈는 파리 그랑 오페라에서 거의 20년 동안 독보적인 바리톤이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이 파리를 점령한 후에는 거의 모든 프랑스 오페라 공연이 금지되었고 대신 독일 오페라가 무대를 점령하였다. 이에 항의하는 앙드레즈 데모하다가 한때 독일군에게 억류되었으나 다행히 미국시민이었기 때문에 석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갈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자 안드레즈는 곧바로 프랑스로 돌아왔다. 프랑스에서 결혼한 피아니스트 부인이 미국에 함께 갔다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는지, 또는 안드레즈 혼자만이 미국으로 갔다가 부인과 합류하기 위해 프랑스로 돌아왔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무튼 프랑스에 돌아온 안드레즈는 부인의 피아노 반주로 리사이틀을 가져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어 오페라계가 정상을 되찾자 메울(Mehul)의 ‘요셉’(Joseph)의 초연에서 타이틀 롤을 맡아 놀라운 성공을 가두었다. 안드레즈는 프랑스 전역과 인근의 벨기에, 모나코 등지에서 공연했지만 미국인이면서도 전후에 미국에서는 단 한번도 오페라에 출연한 일이 없다. 1948년, 거의 반세기를 프랑스에서 보낸 앙드레즈는 무대에서 은퇴한후 미국으로 돌아와 성악 코치로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나자 도저히 프랑스를 잊지 못하여 다시 파리를 찾아갔다. 그로부터 프랑스에서 20여년을 보낸 그는 1973년 고향인 시카고로 돌아와 말년을 보내다가 1975년 82세라는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서 앙드레즈와 장 드 레즈케는 프랑스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음성 스타일은 문화적 특성에 따르며 출생지가 어디냐에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아무리 아서 앙드레즈가 미국에서 태어났고 장 드 레즈케가 폴란드 출신이지만 프랑스의 바리톤으로 인정하는 것은 이들이 프랑스 특유의 보컬 스타일에 흠뻑 젖어있기 때문이다. 안드레즈는 번민과 고통속의 비극적 역할에 적격이었다. 그래서인지 모차르트, 또는 로시니의 작품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다만, 모차르트는 데뷔할 때에 니스에서 돈 조반니를 맡은 일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언제나 비극적인 무거운 파트만 노래한 것은 아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머큐쇼의 발라드를 찬란하게 부른 것은 그가 ‘가벼우며 즐거운’ 역할도 맡아 할수 있다는 증명이었다. 여러 역할을 두루두루 잘하는 성악가가 훌륭한지, 또는 한가지 역할만 충실하게 잘하는 성악가가 훌륭한지는 독자제위가 판단할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