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고대 그리스-21세기

(1590- ) 플로렌스 카메라타의 오버추어

정준극 2008. 3. 4. 17:01

(1590- ) 플로렌스 카메라타의 오버추어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607: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가 만투아(Mantua) 공국에서 초연되었다. 오페라 역사상 최초의 정품 오페라로 간주되는 작품이다.

 

세월이 흘렀다. 이탈리아의 몇몇 작곡가들은 오래전부터 생각은 했지만 실천은 하지 못했던 연극+음악+무용을 실제로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마침 고대 그리스 예술의 영광을 되살리자는 의도에서 몇 명의 뜻을 같이 하는 음악가들이 모임을 갖게 되었다. 찬란한 중세 문화의 도시 플로렌스에서였다. 음악이 취미인 부유한 바르디(Bardi)백작모임이 이 음악가들의 모임을 후원하여 자기 저택의 응접실을 모임장소로 제공했다. 여기에 모인 음악가들은 자기들 스스로를 정식으로 플로렌스 카메라타(Florence Camerata)라고 불렀다. [카메라타라는 말은 작은 방(Room)이란 뜻임. 카메라(사진기)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이들은 ‘우리가 누구인가? 우린 플로렌스의 예술가들이야!’라는 자부심과 함께 음악적 연극이 어떤 형태로 어떻게 공연되어야 하는지를 협의하고 이에 따른 나름대로의 어떤 원칙을 세웠다.

 

플로렌스 우피찌 궁전 극장의 화려한 무대 스케치


우선 막간에 연주되는 마드리갈에 대한 문제를 협의했다. 마드리갈은 3개의 성악파트(聲部)가 대위법(Counterpoint)에 따라 서로 다른 대사를, 서로 다른 멜로디로 노래하는 형태이다. 대개의 경우 반주 없이 노래를 불렀다. 듣기에는 좋은 음악이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첫째 정확한 대위법에 의한 음악을 연주하려면 자기 파트를 정확하게 짚어서 나와야 하는데 다른 파트의 눈치를 보느라고 자기가 나와야 할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면 노래가 엉망이 되기도 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서로 가사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정신을 똑바로 집중하지 않으면 도대체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 무슨 가사를 읊어 대는지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어떤 때에는 노래 부르는 사람 자신도 무슨 가사를 읊고 있는지 모를 경우가 있었다니 알아볼 조이다. 예를 들어서 한 사람은 ‘아, 나는 밥을 너무 많이 먹었도다!’라고 노래 부르는데 다른 사람은 ‘아이고, 화장실에 가고 싶도다!’라고 한다든지, 또 다른 사람은 ‘아, 밥은 언제 주는가?’라고 한다면 대사의 내용에 일관성이 없고 앞뒤가 맞지 않기 마련이다.


프랑스 17세기 오페라 무대


카메라타동호인들은 마드리갈이 혼잡하다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고 이에 대한 어떤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이들은 중요한 대사가 마드리갈의 특성 때문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문제라고 진단했다. 노래 대신에 대사에 약간의 음악 반주를 가미한 레시타티브(Recitative)를 사용하면 대사가 분명하게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오페라에 레시타티브가 도입되었다. 레시타티브에서는 아주 간단한 반주만이 사용되도록 했다. 단순한 코드로 이루어지는 반주에 맞추어 대사를 노래 형태로 부르면 되었다. 어떤 때에는 자기 마음대로 멜로디를 붙여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아무튼 이로써 사람들은 중요한 대사의 내용을 분명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음악가들은 레시타티브만 가지고는 음악적 분위기를 제대로 높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카메라타동호들은 레시타티브로 중요한 대사를 전달하는 것보다는 독립적인 노래(Aria)로 부르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극적인 효과도 상당히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카메라타 클럽의 생각은 초보적 오페라가 현대적으로 발전하게 된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이었다.


고전시기의 오페라


진정한 개혁주의자

자코포 페리(Jacopo Peri)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 기록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실로 그는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진정한 개혁주의자라고 할수 있다. 역사상 최초의 오페라일지도 모르는 그의 첫 오페라 다프네(Dafne)는 일찍이 1597년 무대에 올려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악보가 분실되어 제목만 남아 있는 형편이다. 그의 두 번째 오페라로서 1600년 메디치가를 위해 작곡한 에우리디체(Euridice)는 남아있다. 몬테베르디보다 10여년이나 앞선 이 작품은 음악적으로 볼때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그때까지의 중세적 음악극에 비하면 가히 혁명적인 발상으로 만들어진 오페라였다. 페리의 유리디체는 오페라의 본격시발점을 마련해준 것이라고 할수 있다. 한마디 더 한다면, 초기 오페라의 주제는 대체로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것이었다. 그 전통은 현대에까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었다. 예를 들어 베르크(Berg)의 룰루(Lulu)도 그리스 신화 판도라(Pandora)에 기본을 두었다고 한다.


 자기가 작곡한 오페라의 주인공인 오르페오의 의상을 입고 있는 자코포 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