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0-1650) 최초의 위대한 오페라: 몬테의 대관식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627: 하인리히 슈츠(Heinrich Schutz)의 오페라 다프네가 독일에서 공연되었다. 독일어로 된 최초의 오페라였다. 그러나 그후 다시 공연된 일이 없다.
1632: 몬테베르디가 마르마(Marma)와 만투아(Mantua)를 위해 작곡한 오페라 12편을 배낭채 잃어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를 더 이상 공연할수 없게 되자 로마교황청은 몬테베르디 및 관련자들에게 옐로우 카드를 보이고 경고처분을 내렸다. 때마침 페스트가 전유럽을 뒤덮는 바람에 잃어버린 오페라 악보는 더 이상 찾지 못했다.
1637: 베니스에서 입장료를 받는 최초의 오페라 극장이 문을 열었다. 베니스의 상인이 경영?
1641: 유럽에서 비소(Arsenic)가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약국에서 처방되었다. 극약인 비소를 아주 조금씩 복용하면 나중에 비소의 독에 중독되어도 면역성이 생긴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는 기원전 100년경에 평소 비소를 조금씩 복용하였다. 그리하여 나중에 비소로서 독살당할 뻔 했으나 면역성이 있어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가 하녀를 시켜 음식에 몰래 넣은 비소를 먹고 요단강을 건너게 되었다는 루머도 있었다.
1643: 오페라의 원조 할아버지 몬테베르디가 베니스에서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644: 바이올린 제작의 귀재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같은 바이올린 명기의 등장으로 오케스트라음의 품질개선이 이루어졌다.
'포페아의 대관식' 무대
몬테베르디의 Incoronazione di Poppea(포페아의 대관식: The Coronation of Poppea)는 역사적 실화를 오페라로 작곡한 최초의 작품이다. 그 이전 까지는 신화, 설화, 민화, 전설, 무용담, 전설따라 3천리 등이 오페라의 주제였다. 초창기의 오페라 무대는 화려함의 일변도였다. 그러나 아무리 무대가 놀랍도록 화려하다고해서 훌륭한 오페라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좋은 음악이 있어야 한다. 몬테베르디는 분발했다. 카메라타클럽의 아이디어들을 실제보다 더 훌륭하게 재현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대표작 Orfeo(오르페오)를 보면 알 수 있다. 몬테베르디는 오르페오의 공연에서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사용하여 음향 효과를 높였다. 몬테베르디는 음악적 감각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 오케스트라 각 파트의 음향을 새로운 방법으로 표현했다. 무용 음악도 훌륭했다. 무엇보다도 감정이 충분히 내포된 아름다운 아리아를 만들어 내어 관객들의 마음을 파고드는데 성공했다. 특히 자기 아내가 죽을 때에 부르는 오르페우스의 아리아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머니나 옛날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게 하는 감동적인 것이었다.
'포페아의 대관'의 한 장면. 토론토
그러던중, 지금부터 약 3백 수십년전인 1628년, 파르마 대공의 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결혼식이니만치 이벤트회사가 출동하여 축하를 위한 드라이아이스 연기도 피어나게 했을 것이고 댄스도 있었을 것이며 혹시 비디오 촬영도 있었겠지만 이날의 진짜 특별 순서는 몬테베르디 작곡의 Mercury and Mars(수성과 화성) 공연이었다. 와! 대단한 무대 장치였다. 워낙 저택이 컸으므로 마음 놓고 무대 장치를 했던 것 같다. 무용수들은 말을 타고 춤을 추었다. 무대가 한 순간에 물바다로 변하기도 했다. 바다에서 거인괴물같이 생긴 사람이 파도를 헤치고 등장하는 장면도 있었다. 그 거인괴물 같은 사람은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봉투를 들고 온 제우스신이었다. 제우스신이 신랑신부의 결혼을 축하한다는 대사와 함께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이 연출되자 사람들은 얼떨결에 박수를 쳤다. 몬테베르디의 천재적인 무대 연출과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에 베니스와 인근 공국에서 온 결혼 축하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성공을 거둔 몬테베르디의 오페라는 이탈리아 각지의 열화와 같은 초청에 힘입어 전국 순회공연에 들어갔다. 어떤 때는 인근 합스부르크 제국으로부터 특별 초청을 받기도 했다. 오페라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오페라의 내용은 그리스 신화가 중심이었다. 르네상스가 원래 그리스의 헬라문화를 되찾아 보자는 운동이 아니던가? 따라서 당연히 신들의 얘기, 또는 양치는 목동과 님프의 얘기 등 신화와 전래의 민속 스토리가 대부분이었다. 르네상스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은 예술 장르는 오페라였다.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1597년의 모습
✤ 오르페우스(Orpheus)
오르페우스(오르페오)라는 사나이는 세계 최초의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등장했을뿐만 아니라 로씨(Rossi)의 1647년도 작품, 사르토리오(Sartorio)의 1672년도 작품, 글룩(Gluck)의 1774년도 작품, 또한 오펜바흐(Offenbach)의 파리 스타일의 오페레타, 버트위슬(Birtwishle)의 1980년도 작품에서도 주인공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인기가 많은가? 아폴로의 아들인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인이며 음유가수였다. 오르페우스는 음악이 굳게 닫힌 단단한 마음을 녹일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오르페우스는 예술 홍보대사였다. 그런 인물을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삼는 것은 그리스 신화 활용 및 예술 선전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오르페오'의 무대. 정령들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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