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고대 그리스-21세기

(1500-1580) 순수 음악연극으로서의 도전

정준극 2008. 3. 4. 16:59

(1500-1580) 순수 음악연극으로서의 도전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348-52: 흑사병이 창궐하여 유럽 전체 인구의 거의 반 정도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아시아 검은 쥐가 역병을 옮겼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명문 메디치(Medici)가문의 코시모(Cosimo) 공작이 뜻한바 있어서 스페인 톨레도(Toledo)의 엘 오노라(Eleonora)공주와 결혼하던 날에도 피로연 순서로 연극이 준비되었다. 코시모 공작은 기분이 아주 좋았던지 연극의 막간에 음악 순서를 넣도록 했다. 이런 막간의 음악을 간주곡(Interludes)이라고 했다. 막간 음악을 위해 코르테키아(Corteccia)에게 마드리갈의 작곡을 의뢰했다. 마드리갈(Madrigal)은 그 시대에 가장 인기를 끌었던 음악 형태였다. 마드리갈이라고 하면 교회에서는 무반주의 성가이지만 개인집에서는 짧은 사랑의 노래 등등을 말한다. 연극 중간에 마드리갈을 넣자 피로연에 참석한 결혼 축하객들은 상당히 괜찮은 시도라고 생각했던지 좋은 반응을 보여주었다. 코시모 공작저택에서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는 소문이 날개 돋힌듯 퍼지자 너도 나도 막간 연극 중에 마드리갈을 넣는 순서를 선호하였다. 귀족집 파티에서 마드리갈과 같은 간주곡이 필수과목으로 등장하자 간주곡만을 전문으로 작곡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 중에서도 앞서 말한 코르테키아는 최고의 대우를 받는 당대의 마드리갈 작곡가였다. 중요한 것은 대우가 아니라 그가 고전 오페라의 선각자 중에서도 선각자였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얼마후 이번에는 연극에 음악을 직접 가미하는 방법을 시도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못할 것이 무엇이냐?’는 대답이었다. 몇 명의 간주곡전문 작곡가들이 동호회를 구성하고 고대 그리스 시대에 야외무대에서 출연자들이 노래도 부르고 합창도 하며 춤도 추었던 그런 형태를 한번 시도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천은 하지 못했다. 아마 교회의 눈치가 보였거나 귀찮아서 그랬을 것이다.


 

수도승들의 합창. 토리니 피에트로 작


☻르네상스의 후원자 메디치(Medici) 가문

이탈리아 중부의 피렌체(플로렌스)는 12세기 때부터 모직물 공업이 번영하여 이탈리아의 유력 도시가 되었다. 더구나 피렌체는 이미 13세기에 봉건 귀족의 세력을 물리치고 시민들에 의한 공화정치를 실현한 곳이다. 피렌체는 변화하는 사회를 잘 적응할 줄 알았고 현대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은 도시였다. 15세기에 이르러서는 모직물 공업조합이 피렌체 경제활동의 중심 역할을 했으며 아울러 금융업으로 성공한 부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 돈 많은 사람들이 기왕에 권력까지 쥐게 된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 부호가문중의 하나가 바로 메디치(Medici)가였다. 피렌체의 권력을 쥔 메디치가의 원조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공작은 민주정치의 형태를 보존하며 문화 예술을 진흥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메디치 가문이 정상의 번영을 누리던 때는 원조 코시모 공작의 손자인 로렌조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때였다. 그의 사랑채에는 각처에서 온 미술가, 음악가, 시인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어서 좀 늦게 가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바야흐로 피렌체는 이탈리아 학문과 예술의 전당으로서 고대 아테네와 어깨를 견줄 정도로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나중에 피렌체(플로렌스)가 베네치아(베니스), 제노바(제노아)등과 함께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된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었다.

 

메디치가의 로렌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