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고대 그리스-21세기

(1650-1710) 영국의 발돋움: 디도와 이니아스

정준극 2008. 3. 4. 17:04
 

(1650-1710) 영국의 발돋움: 디도와 이니아스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656: 영국 최초의 오페라라고 할수 있는 작품이 공연되었다. 여러개의 연설에 음악을 곁들인 초보적인 것이었다.

1665: 뉴욕에서 최초로 경마가 선을 보였다. 이로서 경마장 노래도 등장하였다. 나중에는 이발소에서 이발소노래(바버샵)가 등장하였다.

1671: 프랑스 최초의 오페라가 공연되었다. 로베르 캠베르(Robert Cambert)가 작곡한 Pomone(포모느)라는 오페라였다. 이후 서사시 스타일의 비극 오페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1678: 독일 함부르크에서 역사상 최초의 오페라 전용극장이 문을 열었다. 그 이전까지는 궁전이나 귀족들 저택의 정원에서 오페라가 공연되었다.

1687: 프랑스 오페라의 초기 대부였던 장-밥티스트 륄리가 세상을 떠났다.  

1698: 러시아에서는 수염을 기른 모든 남자에게 ‘수염세’를 부과하였다.

1700: 베를린에서는 미혼 여성에게 별도의 세금을 부과하였다. 이로서 많은 처녀들이 결혼을 서두르게 되었다.


'디도의 죽음'


몬테베르디에 힘입어 새로운 형태의 오페라를 발명한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어깨에 힘을 주게 되었다. 결과,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고 동유럽의 여라 나라들은 이탈리아산 오페라를 수입하여 판매하느라고 온통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프랑스가 달리 프랑스이고 독일이 달리 독일인가? 민족자결주의운동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국은 대륙에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수입품 이탈리아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면서 고상한척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탈리아 오페라들의 대사는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어였지만 영국의 귀족들은 이탈리아 오페라를 보았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었을 뿐이며 내용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영국 고유의 오페라를 만들어 낼 생각조차 저만치 박대하고 있었다. 위대한 헨리 퍼셀마저도 초기에는 고작 연극의 막간에 공연되는 반토막 오페라, 또는 마스크(Masque)를 위한 오페라를 작곡하며 만족하고 있었다. 퍼셀의 대표적인 오페라는 ‘디도와 이니아스’이다. 이것도 원래는 첼시아라는 지방의 교회계통 여학교에서 역사수업을 겸하여 공연하기 위해 작곡한 것이다. 그러므로 퍼셀을 영국 오페라의 아버지, 할아버지, 삼촌...아무튼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지만 진실로 영국적 오페라를 개발하여 만들어 낸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양심상 가책을 받을수 있다. 퍼셀의 ‘포페아의 대관식’도 실은 여학생들을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한시간도 못되어 끝나도록 한 간단한 작품이었다. 퍼셀은 그렇다고 치고, 다행히 오페라의 영국화를 추구한 사람도 있었다. 니콜라스 라니에르(1588-1666)였다. 그러나 미안한 말이지만 실제로는 명색뿐인 오페라의 영국화였다. 그가 이룩한 업적중의 하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레시타티브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사람들은 라니에르가 영국 오페라를 위해 그나마 대단히 기여하였다고 자부하였다. 아무튼 영국의 오페라는 전체적으로 보아 침체 일변도였다. 더구나 위대한 올리버 크롬웰경이 사회정화 차원에서 세속적인 모든 드라마의 공연을 금지하는 바람에 영국의 오페라는 갈길을 찾지 못하고 숨어있었다.


'디도와 이니아스'. 에딘버러국제오페라페스티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