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0-1790) 모차르트의 유명 오페라: 피가로와 조반니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772: 영국의 플라이트 앤 켈리(Flight and Kelly)회사가 바람을 넣은 커다란 통을 이용한 최초의 오르간을 개발했다. 이로부터 교회음악의 대발전이 시작되었다.
1786: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 비엔나 궁정극장(부르크테아터)에서 초연되었다.
1778: 밀라노에서 라 스칼라가 문을 열었다. 2년전 화재로 전소된 밀라노 공국의 왕립공작(로열 두칼) 극장 자리에 새로 만든 극장이다. 이탈리아의 거의 모든 작곡가는 라 스칼라를 위해 작곡을 했다. 라 스칼라의 전성기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바톤을 잡고 있을 때였다.
'돈 조반니'
모차르트의 오페라라고 하면 우선 4편의 위대한 작품을 연상하게 된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어떤 작품은 위대하고 어떤 작품은 위대하지 않다고 구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후궁에서의 도피’와 이도메네오(Idomeneo)는 똑같이 위대하다. 하지만 ‘위대한 것이 있으면 위대하지 않은 것도 있다’는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다. 따라서 모차르트의 수많은 오페라 중에서 Le Nozze di Figaro(피가로의 결혼), Don Giovanni(돈 조반니), Cosi Fan Tutte(여자는 다 그래), Die Zauberflöte(마적)는 위대한 작품이다. 거듭 주장하는 일이지만 성공적인 오페라는 음악뿐만이 아니라 대본이 훌륭해야한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대본에서 탁월한 것들이었다. Die Zauberflöte만이 친구 에마누엘 쉬카네더(Emanuel Schikaneder)가 대본을 썼고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의 대본은 모두 당대의 대본가 빈센조 다 폰테(Vincenzo Da Ponte)가 썼다. 모차르트는 이들 대본에 찬란하고 매혹적인 음악을 입혔을 뿐이다. 모차르트는 자기의 오페라에 인간의 불성실함도 표현하였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는 나중에 설명키로 하고 다른 면부터 살펴본다.
'피가로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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