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1790) 오페라 코믹: 하! 하! 하!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711: 요한 하쎄(Johann Hasse)의 오페라 크뢰서스(Croesus)에서 리드가 하나뿐인 클라리넷이 처음 소개되었다. 후에 모차르트는 그의 작품에 클라리넷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만인의 사랑을 받았다.
1727: 영국 만체스터의 신문에 처음으로 결혼광고가 등장하였다. 로시니의 라 가짜(La Gazza)도 신문에 결혼광고를 냄으로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비제의 '카르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코미크에서는 코미디 뿐만 아니라 비극도 공연했다.
생각건대 프랑스 사람들처럼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영국의 유머가 비열하다면 독일의 유머는 음침하다. 하지만 프랑스의 유머는 명랑하다. 독일과 영국의 유머는 다른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웃음을 쥐어 짜 내게 하는 것이지만 프랑스의 유머는 자기 자신을 약간 바보스럽게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반면, 이탈리아의 유머는 남들은 물론 자기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소리를 해놓고 웃는 것이다. 아무튼 프랑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유머의 생활화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자기를 태양이라고 생각한 루이14세의 유머는 그 얼마나 기막힌 것인가? 오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페라 코믹에 갈급한 파리의 시민들은 급기야 전용극장으로서 오페라 코믹(Opera Comique)극장을 세웠다. 명색이 오페라 코믹극장이지만 비극도 자주 공연했다. 카르멘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비극도 코미디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프랑스의 오페라 코믹 전통은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담 드 라 알르(Adam de la Halle)라는 작곡가가 Le jeu de Robin et Marion이라는 코믹 오페라를 내놓은 일이 있다. 그러므로 프랑스 사람들에게 코믹 오페라는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이웃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벨기에로부터 오페라 코믹 작곡가들이 한수 배우기 위해 파리에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오페라 코믹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즐거운 인생 속에 즐거운 예술이 있다!’는 슬로건은 C'est la vie!(그게 인생이야!)라는 프랑스 사람들의 일상적인 표현에도 잘 나타나있다. 아무튼 오페라 코믹은 프랑스적인 모든 스타일을 담고 있는 프랑스 특유의 오페라 형태이다.
프랑스의 루이14세. 혼자서 잘났다고 태양왕이라고 했다. 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댄스는 프로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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