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1828) 슈베르트의 미완성 오페라들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814: 독일의 요한 멜첼(Johann Maelzel)이 메트로놈을 개발했다. 메트로놈의 땍깍땍깍하는 소리는 나중에 베토벤의 교향곡 제8번 2악장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1819: 베토벤이 완전히 소리를 들을수 없게 되었다. 베토벤의 교향곡제9번이 비엔나에서 초연되었다.
1827: 베토벤이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비엔나 시민들이 모두 애도하는 대단한 장례식이었다.
1828: 베토벤이 하늘 나라에 가신지 1년후, 슈베르트도 천국문을 두드렸다. 베토벤을 무척 존경했고 베토벤의 장례식때 영구차 앞에서 장례 횃불을 들었던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묘지에 되도록 가깝게 묻히기를 원했다. 현재 슈베르트의 묘는 비엔나 중앙묘지의 음악가 묘역에서 베토벤의 묘지를 바라보며 있다.
비엔나 짐머링의 첸트랄프리드호프(중앙공동묘지)의 음악가 묘역에 있는 슈베르트의 묘지와 묘비
베토벤의 휘델리오가 오늘날에도 불후의 명작으로서 존경받고 있는 반면에 슈베르트의 오페라(독일식 징슈필)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유야 간단하다. 제대로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슈베르트는 오페라 작곡을 여러번 시도했었다. 문제는 처음에는 계획을 잡고 시작했다가도 진전이 안되면 그냥 놓아두고 다른 작품으로 고개를 돌린데에 있다. 몇가지 예외가 있다. 영웅적 로맨틱 오페라인 Fierabras(휘에라브라스)는 1823년에 작곡했으나 슈베르트 사후 거의 50년만인 1897년에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Alfonso und Estrella(알폰소와 에스트렐라)라는 오페라는 1822년에 작곡했으나 역시 슈베르트 사후 30여년만인 1854년 까지는 공연되지 않았다. 초기의 3막짜리 마법의 오페라인 Des Teufels Lustscholss(악마의 욕망성)도 같은 운명이었다. 다른 것은 미완성이거나 스케치만 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 아마 슈베르트가 오페라보다도 가곡에 더 헌신했던 때문인 것 같다.
슈베르트의 징슈필 '휘에라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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