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휘델리오들
베토벤(1770-1827)의 최고 걸작(opus magnum)인 휘델리오의 스토리는 베토벤 혼자만의 등록상표가 아니다. 그렇다고 우연히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사실은 당시에 활동했던 다른 두 명의 저명 작곡가들도 같은 스토리의 작품을 썼으며 베토벤은 이들 작품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았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다른 두 작품이 모두 베토벤의 휘델리오보다 먼저 공연되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페르디난도 패르(Ferdinando Paer: 1771-1839)가 이탈리아의 조반니 슈미트(Giovanni Schmidt)가 쓴 대본으로 레오노라(A Leonora)라는 오페라를 작곡했다. 레오노라는 프랑스의 부일리(Bouilly)의 소설인 레오노르 또는 ‘부부애’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패르의 레오노라는 1804년 드레스덴에서 초연되어 대단한 갈채를 받았다. 이탈리아의 시모네 마이르(Simone Mayr: 1763-1845)가 이탈리아어 대본으로 1805년에 라모레 콘유갈레(L'amore conjugale: 부부애)라는 오페라를 작곡했다. 역시 부일리의 작품에 기본을 두었으나 내용을 보다 자유스럽게 만든 것이다. 프랑스의 피에르 가보(Pierre Gaveaux: 1760-1825)가 프랑스어의 휘델리오를 작곡한 것은 이미 설명했다. 제목은 레오노르(Léonore) 또는 라무르 콘주갈(L'amour conjugal)이었다. 원작은 역시 부일리의 소설이었다. 1798년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베토벤의 '휘델리오'
✤ 장 니콜라 부일리(Jean-Nicolas Bouilly: 1763-1842)는 휘델리오 스토리의 기반인 레오노레(Leonore)의 대본을 쓴 극작가이다. 부일리는 케로비니의 Les deux jounées를 비롯한 여러편의 오페라 대본을 썼다. 그는 원래 파리 시의회에 속한 변호사였으나 혁명이 일어나자 혁명세력에 가담하여 여러 기여를 하였다. 그로써 그는 고향인 뚜르(Tours)의 군사위원장을 맡아 했으며 이어 혁명정부의 초등교육문제를 담당하는 공공지도위원회의 위원으로도 활약했다. 그러다가 모든 공직을 사퇴하고 극작활동에만 전념하였다.
장-니콜라 부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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