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고대 그리스-21세기

대본공장 공장장 스크리브

정준극 2008. 3. 5. 09:11

대본공장 공장장 스크리브


유제느 스크리브


유제느 스크리브(Eugène Scribe: 1791-1861)는 빈곤한 하층계급 출신이었다. 그러나 뛰어난 명석함으로 주위의 인정을 받아 장학생으로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할수 있었다. 시대는 자유, 평등, 박애에 대한 사상이 서서히 고개를 쳐들기 시작하던 때였다. 스크리브는 그런 사조에 합류하여 파리의 극장 공연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스크리브는 연극과 오페라를 위한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약 1백편의 대본을 써 놓고 작곡가들에게 마음대로 고르도록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주문을 받다 오페라 대본을 쓰기도 했다. 그에게 대본을 의뢰하거나 이미 써놓은 대본을 가져가서 오페라를 쓴 작곡가는 로시니, 벨리니, 도니제티, 구노, 알레비, 베르디 등이었다. 스크리브는 오페라 대본을 제조해 내는 공장의 공장장이었다. 우연이겠지만 스크리브(Scribe)는 문서를 쓴다는 뜻의 단어이다.

 

'아드리아나 르쿠브러'. 타이틀 롤의 안나 네트렙코. 메트로폴리탄.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아드리엔느 르부브뢰르)는 18세기 프랑스의 코메디 프랑세 극장에서 이름을 떨치던 여배우였다. 그의 연기는 프랑스의 연극을 인습적인 연기와 대사로부터 자연주의적인 연기와 대사로 변환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그러나 37세의 한창 나이로 세상을 떠나서 더 이상의 연기활동을 펼칠수 없게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라이발 애인이 독살을 했다고 한다. 아드리엔느 르쿠브뢰르의 이야기를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칠레아가 유제느 스크리브의 희곡을 바탕으로 삼아 오페라로 만들었다. 오페라 '아드리아나 르부브뢰르'는 1902년 밀라노의 테아트로 리리코에서 초연되었다. 그 때에 무대는 아드리엔느 르쿠브뢰르가 무대에 섰던 코메디 프랑세 극장을 그대로 재현하였다.


유제느 스크리브의 희곡을 오페라 대본으로 채택한 경우

- 빈첸조 벨리니의 '몽유병자'(La sonnambula): 발레 판토마임을 위한 희곡을 바탕으로 삼았다.

- 게타노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L'elisir d'amoure): 희곡 '묘약'(Le philtre)를 바탕으로 삼았다.

- 프란체스코 칠레아의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Adriana Lecouvreur). 같은 제목의 희곡을 바탕으로 삼았다.


유제느 스크리브의 대본을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든 경우

- 프랑수아 아드리앙 부엘듀의 '하얀 옷의 여인'(La dame blanche)

- 다니엘 오버의 '포르티시의 벙어리 소녀'(La muette de Portici); '프라 디아볼로'(Fra Diavolo); '귀스타브 3세'(Gustave III) 또는 '가면무도회'(Le bal masqué); '마농 레스꼬'(Manon Leacaut)

- 조아키노 로시니의 '오리 백작'(Le comte Ory)

- 자코모 마이에르베르의 '악마 로베르'(Robert le diable), '위그노'(Les Huguenots), '예언자'(Le prophète), '아프리카 여인'(L'Africaine)

- 프로멘탈 알레비의 '유태여인'(La Juive)

- 게타노 도니체티의 '돔 세바스티앙'(Dom Sébastien)

- 주세페 베르디의 '시실리의 저녁기도'(Les vêpres siciliennes)


'시실리의 저녁기도'. 코펜하겐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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