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1800) 프랑스의 오페라 코믹: 동지들! 이게 아닌데!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791: 하이든의 놀람(Surprise)교향곡이 발표되었다. 청중들은 조용한 음악이 나오다가 갑자기 북소리와 함께 포르테가 나오자 정말 모두 놀랬다.
1794: 프랑스 혁명가 카미유 드물랭(Camille Desmoulins)은 길로틴에 처형될 때에 살려달라고 처절하게 애걸했지만 결국 죽었다. 2주 후, 그의 부인도 체포되어 처형을 당하였다. 그러나 부인은 마치 순교자처럼 의견하게 죽음을 택하여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오페라를 애호했던 마리 앙뚜아네트도 길로틴의 이슬로 사라질때 의연했었다.
1797: 러시아의 위대한 카테리나(캐서린)여제가 세상을 떠났다. 짜르의 호칭 앞에 Great라고 붙인 경우는 마지막이었다. 카테리나대제는 오페라 육성을 위해 많은 후원을 했다.
루이지 케루비니
프랑스혁명 이전부터 오페라 코믹은 과거의 지나치게 경망스럽고 단순한 양상에서 탈피하여 상당히 신중해 지려는 경향을 보였다. 오페라 코믹은 비록 풍자적이고 로맨틱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무언가 내용이 가볍고 음악적으로도 신중하지 못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다가 혁명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자 오페라 코믹의 신중 지수도 한 층 수위를 높이게 되었다. 왕족들이나 귀족들이 좋아하는 장엄하고 화려한 무대는 차츰 사라지게 되었고 일반적인 무대를 추구하게 되었다. 모든 예술은 특권층이 아닌 보통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멜로드라마가 최고였다. 대사와 노래는 알아듣기 쉬운 스타일로 변했고 오페라의 내용은 사치 및 부도덕에서 벗어나 도덕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하는 멜로드라마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이것이 당시 오페라 코믹의 현주소였다. 케루비니의 메데(Médée)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오페라 코믹이었다.
케루비니의 '메데'에서 제이슨(콜린 에인스워스)과 메데(페기 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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