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고대 그리스-21세기

(1870-1880) 비제의 죽음, 카르멘의 부활

정준극 2008. 3. 5. 09:13

(1870-1880) 비제의 죽음, 카르멘의 부활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873: 이탈리아의 위대한 테너 엔리코 카루소가 나폴리에서 태어났다. 카루소는 40편 이상의 오페라에 6백회 이상 출연하였고 처음으로 오페라의 아리아를 음반에 취입하여 자기의 음성을 유산으로 남겼다.

1875: 비제가 세상을 떠나기 몇달전 파리 오페라 코믹극장에서 카르멘이 초연되었다.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카르멘은 오늘날 세계 오페라무대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작품중의 하나가 되었다.


조르즈 비제


마스네, 생-생, 들리브는 오페라 코믹에 전념하였지만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한 때에 파리 오페라 코믹극장의 책임자인 카미유 뒤 로클(Camille du Locle)이 청년 비제를 전격 발굴하고 그에게 오페라 코믹극장에서 공연할 오페라를 의뢰하였다. 오페라 코믹극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극장장의 배려와 지원에도 불구하고 비제의 첫 작품인 Djamileh(쟈밀레)는 실패였다. 대본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쟈밀레는 종교적으로 볼때나 도덕적으로 볼때 당시 사회규범에 합격미달이었다. 세계 최고의 오페라 중의 하나인 카르멘은 비제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몇 달전에 무대에 올려졌다. 오페라 코믹을 새로운 눈높이와 새로운 귀높이로 인도해준 작품이었다. 카르멘은 지금까지 볼수 없었던 밑바닥 서민들의 비극을 다룬 것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카르멘은 칼에 찔려 죽는다. 무대 위에서 여주인공이 칼에 찔려 죽어 넘어지는 장면은 과거에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일이었다.

 

비제의 '카르멘'. 하바네라

 

여직공들이 집단 싸움을 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음악전공의 점잖은 합창단원들이 서로 치고받으며 싸움질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시도였다. 카르멘은 초연이후 8년 동안 파리의 무대에 다시 올려지지 못했다. 불건전, 비도덕, 육감적, 관능적 등등의 타부적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시 무대를 찾아 왔을 때에는 대박이었다. 카르멘은 프랑스 오페라를 현실주의, 사실주의로 이끌어준 것이었다. 비제는 36세라는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베르디는 36세 때에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었다. 비제와 거의 같은 시기를 살았던 생-생은 강렬하고 열정적인 감정이 넘쳐있는 Samson et Dalila(삼손과 델릴라)를 내놓았다. 마스네는 우리 귀에 익은 Manon(마농), Werther(베르테르), Thais(타이스)를 내놓았다. 들리브는 Lakme(라크메)로서 신비스럽고도 새로운 그랜드 오페라의 경지를 개척했다.


비제의 '진주조개 잡이'. 추르가, 나디르, 레일라. 시애틀 오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