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1830) 혁명후의 오페라 코믹: 하, 하, 하! 헉?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816: 나폴리의 산 카를로(San Carlo)극장이 6개월 이상의 공사를 마치고 완공되었다. 이탈리아에서 관객들이 가장 소란스런 극장으로 이름나 있다.
1825: 아드리앙 부엘듀(Adrien Boieldieu)의 La Dame Blanche(흰옷 입은 여인)이 초연되었다. 당대 최고의 오페라 코믹으로서 파리 오페라 코믹극장에서 1862년까지 거의 40년동안 1천회 이상의 공연을 한 기록을 지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오페라를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끌어 모으는 힘을 가진 오페라’라고 평하였다. 고아인 안나(Anna)의 음악은 특별히 아름답다. 안나가 하얀 옷을 입고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하프가 아르페지오로 연주하여 신비감을 갖게 했다.
1834: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후 빅토르 위고의 작품은 여러 작곡가들의 오페라 주제가 되었다.
갸스파레 스폰티니
그러나 오페라 코믹의 혁명적 스타일은 별로 오래 가지 못했다. 새로운 스타일이 계속 고개를 들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부분 작곡가들은 오페라 코믹이라는 이름 아래 그랜드 오페라의 스타일을 추구하였다. 과거에 대한 향수가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가스파레 스폰티니(Gaspare Spontini)는 대표적이었다. 무대는 역시 화려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로시니의 파리 입성은 또 다른 변화를 예고한 것이었다. 그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은 화려하고 분방한 것이었다. 베버의 Die Freischütz(마탄의 사수)도 프랑스 오페라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여기에 프랑스 토박이 작곡가인 페르디낭 에롤드(Ferdinand Hérold)가 가세하였다. 에롤드는 불행하게도 한창 일할 때에 세상을 떠났지만 죽기전에 ‘나는 이제야 무대가 무엇인지 이해할수 있었도다!’라면서 더 살고 싶은 아쉬움을 표시했다. 오페라와 무대는 긴밀한 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에롤드의 주장이었다. 에롤드의 Zampa(잠파)는 한정된 무대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화려함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마치 몬테베르디의 웅장하고 스펙터클한 무대를 다시 보는것 같았다. 18세기 초 오페라 코믹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아드리앙 부엘듀(Adrien Boildieu)였다. 부엘듀의 La Dame Blanche(하얀 옷의 여인)은 오페라 코믹의 백미였다. 재미있고 낭만적이며 무대가 화려했다. 오페라 코믹은 관중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뷰엘듀의 생각이었다.
부엘듀의 '하얀 옷의 여인'
'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 > 고대 그리스-21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르멘 존스(Carmen Jones) (0) | 2008.03.05 |
---|---|
(1870-1880) 비제의 죽음, 카르멘의 부활 (0) | 2008.03.05 |
(1780-1800) 프랑스의 오페라 코믹: 동지들! 이게 아닌데! (0) | 2008.03.05 |
(1800-1870) 오케스트레이션의 제왕 베를리오즈 (0) | 2008.03.05 |
대본공장 공장장 스크리브 (0) | 2008.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