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 생애
베르디는 부세토(Busseto)부근의 론콜레(Roncole)에서 1813년 10월 9일(한글날)에 태어났다. 베르디의 아버지는 론콜레에서 여관을 경영했고 때로는 장사도 했다. 땅도 조금 있어서 명색이 지주였지만 그렇다고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다. 베르디는 세 살때부터 음악을 공부했다. 첫 작품은 15세 때에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서곡을 나름대로 별도로 작곡해 본 것이었다. 작곡에 뜻을 둔 베르디는 19세 때에 밀라노음악원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입학을 거절당했다. 아직 음악원에 들어올 정도의 실력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고향으로 돌아 갈수도 없었던 베르디는 밀라노에 눌러 있으면서 당대의 음악교사인 빈센초 라비냐(Vincenzo Lavigna)로부터 작곡에 대한 개인 교습을 받았다. 그후 부세토성당의 음악지휘자(Maestro Di Capella)로 임명되어 활동했다.
오페라의 황제이며 이탈리아의 국민적 영웅인 주세페 베르디
6년후인 1838년, 베르디의 첫 가곡작품이 밀라노에서 출판되었다. 베르디의 가곡은 어느 정도의 호응을 받았다. 이에 힘입은 그는 첫 오페라인 Oberto(오베르토)의 작곡에 도전하였다. 오베르토는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나부코'로서 비로소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위치를 굳히게 되었다. 베르디는 1943년부터 1953년까지 10년동안 프랑스, 영국 등 여러곳에서 활동했다. 베르디의 오페라는 종교적이면서도 애국적인 내용이어서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더구나 그의 멜로디는 마음을 움직이는 아름다운 것이었다. 베르디에 대한 인기는 날로 높아갔다. 1857년, 파리에서 지내던 베르디는 44세의 중년으로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오랜 외국생활의 결과에서인지 이탈리아로 돌아온 후 그의 작품은 상당히 국제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한편 1874년, 베르디는 새로 구성된 이탈리아 의회의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베르디가 61세때였다. 1901년 1월 27일 베르디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재산 중에서 상당액을 은퇴음악가들의 마지막 안식처인 ‘음악가양로원’을 설립하는데 기부했다. 베르디의 죽음은 전 이탈리아를 슬픔에 젖게 했다.
베르디의 두번째 부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 유명한 소프라노로서 베르디의 오페라에서 몇차례 주역을 맡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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