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1860) 러시아는 원한다! 글링카를!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809: 눈물을 통해 웃음을 찾는 풍자 소설로 이름난 니콜라이 고골(Nikolai Gogol)이 태어났다.
1835: 드라이아이스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드라이아이스로서 섭씨 영하 110도를 기록했다. 이는 남극에서 가장 추운곳 보다 더 내려간 온도였다. 드라이아이스가 내뿜는 안개는 너도나도 중요한 무대 효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836: 러시아의 대표적 국민오페라인 글링카의 이반 수자닌(황제를 위한 삶)이 생페테르부르그 마리인스키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글링카는 1857년 세상을 떠났다.
글링카의 '이반 수자닌'
오페라는 이탈리아가 원조로서 영국, 프랑스, 독일에 확산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예술적 패션이라는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오페라를 발전시켜 나갔다. 이들 나라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오페라를 만들기 시작했다. 러시아 오페라를 언급함에 있어서 피터대제와 생페테르부르그를 말하지 않을수 없다. 피터(표트르)대제가 건설한 생페테르부르그는 서구(西歐)를 향한 러시아의 창문이었다. 그리하여 18세기에는 이윽고 이탈리아와 프랑스 오페라가 생페테르부르그에서 공연되어 러시아의 오페라 기근에 대한 해갈을 해 주었지만 반면에 진실로 러시아적인 오페라는 없었다. 러시아인에 의한 첫 오페라로는 Dementry Zorin(데멘트리 조린)의 Rebirth(재생)이란 것이 있다. 1777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후 1779년에 미하일 소콜로브스키(Mikhail Sokolovsky)의 코믹 오페라 ‘마법사 방앗간 주인: 속임수와 중매쟁이’(The Miller Who Was a Wizard: a Cheat and a Matchmanker)가 나왔다. 이 작품은 스토리를 러시아 농부의 일상생활에서 따온 발라드 오페라이다. 노래와 대사를 혼합한 단순한 형태의 것이었다. 이러한 ‘단순’ 형태는 그 후 여러해 동안 러시아 오페라의 패턴이 되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마리인스키 극장
국제 수준에 합당한 오페라를 내놓은 최초의 러시아 오페라 작곡가는 미하일 글링카(Mikhail Glinka)였다. 글링카는 두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Ivan Susanin(이반 수자닌: 또는 황제를 위한 삶)과 푸슈킨의 서사시를 원본으로 한 Ruslan y Lyudmila(루슬란과 루드밀라)이다. 글링카의 오페라 수법은 다른 어느 나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벨리니, 또는 도니제티의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독자적이며 대단히 러시아적이다. 오케스트레이션에서 그런 점을 인식할수 있다. 생페테르부르그의 또하나 명물은 마리인스키(Mariinsky)오페라 극장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고 해도 좋은 무대가 없으면 빛을 보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는 피터대제와 그 이후의 카테리나여제에 의하여 마리인스키 극장이 부흥 발전되었음은 치하할 일이다.
'이반 수자닌'. 마리인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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