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슬라브 베이스 Boris Christoff (보리스 크리스토프)
보리스 크리스토프
1914년 불가리아의 소피아에서 태어나 1993년 로마에서 세상을 떠난 보리스 크리스토프는 20세기 낳은 가장 위대한 베이스의 한 사람이다. 그는 원래 법학을 공부하고 20대에 지방검사로 일하기 시작했으나 성악에 대한 집념을 접어 둘수 없어서 시간만 있으면 성당 성가대에서 독창자로 활약하며 능력을 다져왔다. r결국 그는 지방검사를 사퇴하고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성악을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갔다. 1946년, 그는 이탈리아에서 콜리네(라 보엠)로 오페라에 주역급으로 처음 출연했다. 콜리네로 성공을 거둔 그는 이어 유럽의 유명 오페라극장에서 여러 역할을 맡으며 경력을 쌓아갔다. 1950년, 그는 메트로의 초청을 받았으나 새로운 이민법 때문에 입국을 거절당했다. 소련 블록 국가 사람들의 미국 이민을 금지하는 법이었다. 6년후, 그는 이민법이 완화되는 바람에 샌프란시스코오페라에 설수 있었으나 메트로에서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후 미국과 영국에서 지내던 보리스는 1967년 불가리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고향에 갔었고 내친김에 유럽 각국에서의 선풍적인 요청으로 수많은 오페라에 출연하였다.
70세가 지난 그는 이제 더 이상 연주회 활동을 하기가 어려워 1986년 로마의 불가리아음악원에서의 고별 연주회를 끝으로 은퇴하였다. 그는 79세로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다. 불가리아의 전국민이 애도하였다. 그의 유해는 소피아로 옮겨져 불가리아의 국장으로 장례식이 치루어졌다. 그는 슬라빅 베이스의 위대한 유산을 계승한 인물이다. 그의 음성은 드라마틱하며 그의 무대 연기는 필적할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주로 베르디와 러시아 오페라의 베이스를 맡아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역할은 보리스 고두노프, 이반(황제를 위한 삶), 스가랴, 피짜로, 돈 바실리오 등이다. 위대한 연기자이며 베이스인 그도 무대 밖에서는 동료 성악가들과 좀 문제가 있었다. 로마 오페라에서 메데아를 공연할 때는 상대역인 마리아 칼라스와 사이가 나빠져서 큰 어려움이 있었다. 라 스칼라에서는 동료 불가리아 성악가인 니콜라이 기아우로프를 불가리아 공산당의 앞잡이라고 비난하는 바람에 라 스칼라와의 계약이 해약되기도 했다. 니콜라이 기아우로프는 소프라노 미렐리 프레니의 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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