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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를 감동시킨 Antonio Cotogni (안토니오 코토니)

정준극 2008. 3. 5. 12:37
 

베르디를 감동시킨 Antonio Cotogni (안토니오 코토니)


1880년대 말에 유럽의 오페라무대를 압도하였던 이탈리아의 유명한 베이스-바리톤 안토니오 코토니가 어느날 ‘돈 카를로’에서 필립왕의 아리아 Ella giammai m'amo를 부를 때 객석에 앉아 이 아리아를 들은 베르디는 너무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여인(왕비)을 사랑하는 마음을 너무나도 심금을 울리며 불렀기 때문이었다. 베르디는 비록 자기가 작곡했지만 필립2세의 아리아를 이토록 훌륭하게 표현한 성악가는 일찍이 없었다고 하며 안토니오 코토니에게 찬사를 보냈다. 코토니는 은퇴후 저명한 성악 교수가 되었다. 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제자는 보통 엘비(LV)라고 불리는 쟈코모 라우리-볼피(Giacomo Lauri-Volpi)이다. 베냐미노 질리, 주세페 디 루카, 마리아노 스타빌레도 수제자였다. 존 브라운리(John Brownlee)와 장 드 레스케(Jean de Reske)도 한때 그의 가르침을 받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진정한 오페라 아티스트였다. 그는 자기가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해석하기 위해 남모르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작곡자가 의도하는 바를 충분히 표현하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하였다. 그는 관중들에게 음악적으로 대화를 나눈 몇안되는 아티스트였다. 그는 오페라가 음악이 있는 연극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안토니오 코토니


위대한 베이스-바리톤 안토니오 코토니는 1831년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는 19세기 말, 이른바 ‘벨칸토의 황금시기’에 활동하였다. 그의 첫 오페라 데뷔는 ‘사랑의 묘약’에서 벨코레였다. 도니제티가 돈 파스쿠알레를 작곡할 때 코토니를 염두에 두고 말라테스타(Malatesta)를 작곡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1867년은 그의 경력에 또 다는 이정표를 세워준 해였다. 로시니의 앞에서 직접 오디션을 받았기 때문이다. 로시니는 코토니에게 피가로의 역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개인적으로 자문해 주었다. 아무튼 코토니는 벨리니, 도니제티, 로시니의 벨칸토 오페라에서 대단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코토니는 베르디에 심취하게 되었다. 1867년 이탈리어어로 된 돈 카를로의 이탈리아 초연(볼로냐)에서 포사(Posa) 로드리고의 역할을 시작으로 그는 베르디의 작품과 함께 평생을 함께 하였다. 그가 무대에서 은퇴한후 후진들을 가르칠 때에 도니제티, 벨리니, 베르디가 그의 작품들의 초연을 위한 리허설에서 어떤 부분을 어떻게 고치고 삭제했는지 등을 그가 겪었던 실제로의 경험에 비추어 자세히 가르쳐주어 나중에 제자들이 그 역할을 맡을 때에 작곡자들이 의도했던 사항을 정확히 해석토록 해주었다. 그는 1918년,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참으로 위대한 예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