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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우크라이나의 민속혼 Boris Gmyrya (보리스 그미리아)

정준극 2008. 3. 5. 12:39
 

위대한 우크라이나의 민속혼 Boris Gmyrya (보리스 그미리아)


보리스 그미리아는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악가중의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명성이 서유럽이나 미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음은 실로 유감이다. 그의 레퍼토리는 베이스와 바리톤 역할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의 음색과 음역(tessitura)은 베이스-바리톤의 범주에 속한다. 그는 벨칸토에 기본을 둔 아름답고 공명이 잘되는 소리를 냈다. 그런 면에서는 같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선배로서 세계적인 마르크 라이젠(Mark Reizen: 1895-1992)과 같은 벨칸토 베이스-바리톤이었다. 그미리아는 ‘보리스 고두노프’의 마지막 죽음의 장면에서 아무도 따를수 없는 역량을 보여주었다. 물론 페오도르 샬리아핀이나 막심 피로고브(Maxim Pirogov)처럼 감정이 폭발하는 표현은 미흡했지만 대신 보리스의 절망적인 심리상태를 세련되게 표현하여 감동을 주었다.

 

 보리스 그미리아


보리스 그미리아는 1903년 우크라이나의 레베닌(Lebenin)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미리아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우크라이나 민속노래를 불러 사랑을 받았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그는 11세 때부터 어떤 공공기관의 사환으로 들어가 일해야 했다. 16세 때에는 부두 노동자를 거쳐 직접 화물선을 타고 화부노릇도 하고 선원 생활도 했다. 1927년, 그는 24세 때에 노동자학교에서 기본교육을 받은후 공립 카르코브(Kharkov)건축학원에 들어가서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건축학원은 문학과 예술도 함께 가르쳤다. 그는 건축학원에 다니면서 이곳저곳의 지방극장에서 노래를 불렀다. 얼마가지 않아서 그의 이름은 그 지방에서 목소리 좋은 청년으로 상당히 알려지게 되었다. 1936년, 아직도 카르코브건축학원에 다닐 때에 그는 카르코브오페라극장의 단원으로 들어 갈수 있었다. 그의 첫 오페라 데뷔는 굴락-아르테모브스키(Gulak-Artemovsky)의 우크라이나 오페라인 ‘다뉴브 건너 자포로즈예 코사크’에서 술탄을 맡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정작 인정을 받게 된 것은 1939년 전국성악경역대회에서 특상을 받고나서부터였다. 이로서 그는 다른 성악가들과 함께 러시아 전역을 순회하며 연주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미리아의 생활은 오페라와 함께 시작 되었다.


그는 약 40편의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역할은 그레민, 보리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짜르의 신부’중에서 소바킨(Sobakin), 다르고마츠키의 ‘인어’중에서 방앗간집 청년 등이다. 특히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서 살리에리를 맡은 것은 그의 뛰어난 재능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콘서트 무대에서나 라디오 방송을 통해 더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는 무쏘르그스키, 보로딘, 라흐마니노프, 브람스, 슈만, 그리그, 드보르작, 루빈슈타인, 슈베르트 등의 가곡과 우크라이나 민요를 불러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루빈슈타인의 ‘페르시아 노래’와 쇼스타코비치의 노래는 음악연극의 형태로 연주하여 박수를 받았다. 그는 1941년 우크라이나정부로부터 명예예술가 타이틀을 받았으며 1952년에는 당시 소련정부로부터 소련인민예술가의 타이틀을 받았다. 그는 같은 해에 우크라이나 국가공로훈장을 받았으며 1966년에는 최고의 영예인 레닌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