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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로이트의 명가수 Clarence Whitehill (클래런스 화이트힐)

정준극 2008. 3. 5. 12:40
 

바이로이트의 명가수 Clarence Whitehill (클래런스 화이트힐)


미국 아이오와주 마렝고(Marengo)에서 태어난 클래런스 화이트힐(1871-1932)은 시카고에서 특배회사 사무원으로 일하면서 고학으로 성악을 공부하여 성공한 경우이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1896년, 그가 25세 때에 멜바가 발견했다. 시카고에서 화이트힐의 노래를 들은 멜바는 화이트힐이 좀 더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하고 프랑스에 가서 공부할 것을 적극 권장하였다. 돈이 없다고 하자 마렝고 마을의 어떤 여유 있는 사람이 ‘마을이름 한번 빛내보고 좋은 일 한번 해 보자’라는 생각에 화이트힐의 여비와 학비를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화이트힐은 파리에서 유명한 성악교사인 죠반니 스브릴리아(Giovannii Sbriglia)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죠반니 스브릴리아는 드 레즈케(De Reszkes)와 폴 플란송(Pol Plançon)과 같은 스타를 키워낸 탁월한 성악교사였다. 화이트힐은 3년후인 1898년 브뤼셀의 모네(Monnaie)극장에서 ‘무슈 클래랑스’(M Clarence)라는 이름으로 데뷔하였다. 마침 영국의 그랜드오페라단이 메트로 공연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는 일이 있자 화이트힐은 이 오페라단과 함께 뉴욕으로 돌아와 몇차례 함께 출연했다. 오페라에 몰입하기 시작한 화이트힐은 바그너에 매료하여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독일로 건너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율리우스 슈토크하우젠(Julius Stockhausen)에게 본격 가르침을 받았다. 슈토크하우젠은 전설적인 마누엘 가르시아의 제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바리톤이었다.

 

클레런스 화이트힐


드디어 화이트힐은 1904년 바이로이트에서 볼프람으로 등장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어 암포르타스, 군터를 맡아 두각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재능으로 그는 바그너의 부인인 코지마(Cosima)로부터 바이로이트 특별멤버로 인정을 받았다. 그는 1908년 다시 메트로를 방문하여 볼프람으로서 호평을 받았으며 그로부터 10일후에 맡은 암포르타스는 화이트힐을 독보적인 암포르타스로 만들어준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메트로와의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였으며 1932년, 6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메트로의 주역 바리톤으로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메트로에서 가장 찬사를 받은 역할은 한스 작스(뉘른베르크의 명가수)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맡은 역할은 세상을 떠나기 몇 주전에 워싱턴 탄생 2백주년 기념으로 공연된 갈라에서 조지 워싱턴을 맡은 것이었다. 화이트힐은 메트로에서 바그너를 주로 맡아 명성을 떨쳤지만 프랑스 작품에 있어서도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특히 드빗시의 ‘플레아와 멜리상드’에서 골러드(Golaud), 마스네의 타이스에서 아타나엘, 샤펜티어의 루이제에서 아버지 역할은 따라올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화이트힐은 아름다운 음성과 귀족적인 스타일, 그리고 위엄 있는 맨너로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음반에서는 독일어로 부른 바그너 작품들이 뛰어나다. 화이트힐의 삶은 한마디로 새마을 성공사례를 보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암포르타스 역할의 클래런스 화이트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