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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하고 우아한 음성 Friedrich Schorr (프리드리히 쇼르)

정준극 2008. 3. 5. 12:45
 

장엄하고 우아한 음성 Friedrich Schorr (프리드리히 쇼르)


프리드리히 쇼르

 

헝가리출신의 미국 베이스-바리톤인 프리드리히 쇼르의 음성에는 ‘바킹 톤’(Barking Tone)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바킹이란 단어는 대포소리가 쾅하고 울린다는 뜻으로 결국 ‘바킹 톤’은 ‘바리톤의 왕’이라는 의미이다. 그의 노래는 참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장엄하고 우아한 음성은 마치 제왕의 음성과 같다. 그는 공명이 잘 된 메짜보체를 가지고 있으며 소리에 아름다운 색채를 입히는 뛰어난 재능이 있다. 그의 흔들림이 없는 레가토는 대단히 독특하다. 그는 내면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프리드리히 쇼르(1889-1953)는 가장 뛰어나고 가장 중요한 바그너 바리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바그너에만 전념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레퍼토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폭이 넓다. 그러므로 그는 위대한 바그너 바리톤이면서도 바그너 바리톤만은 아니었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서 한스 작스 역의 프리드리히 쇼르


프리드리히 쇼르는 헝가리의 나지바라드(Nagyvarad)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변호사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성악가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아버지는 유태교 회당의 유명한 칸토(Cantor: 유태교회당의 주창자)이며 뛰어난 바리톤이었다. 아버지를 닮아 아름다운 음성을 가진 아들 프리드리히는 브르노(Brno)의 아돌프 로빈슨(Adolf Robinson)에게서 본격적인 성악 레슨을 받았다. 로빈슨 선생은 레오 슬레작(Leo Slezak)을 키워낸 유능한 교사였다. 나중에 로빈슨 선생은 쇼르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시카고 오페라에 추천해 주었다. 쇼르는 오스트리아의 그라츠(Graz)에서 발퀴레의 보탄(Wotan)으로 오페라에 첫 데뷔하였다. 이 첫 데뷔는 뜨거운 갈채를 받은 것이었다. 그는 즉각적으로 그라츠 오페라로부터 4년 계약을 제의 받을 정도였다. 그라츠의 쇼르라는 이름은 순식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1916-1923년의 약 7년 동안 그는 프라하와 쾰른에서 고정적으로 출연했으며 베를린 슈타츠오퍼, 코벤트 가든, 바이로이트의 초청 아티스트로서 활동하였다. 그는 바그너 역할뿐 아니라 아모나스로, 에스카미요, 바락(Barak), 보로메오(Borromeo), 부소니의 닥터 파우스트, 스카르피아, 미셀(Michele), 피짜로(Pizzaro)등으로서도 이름을 떨쳤다.

 

 돈 피짜로 역의 프리드리히 쇼르


 

그의 오페라 경력중 중요한 시기는 메트로에서였다. 그는 1923년부터 1943년까지 메트로의 주요 베이스-바리톤이었다. 한스 작스(명가수)는 최고의 찬사를 받은 역할이었으며 1943년 고별 공연때의 역할은 지그프리트였다. 은퇴후 그는 콘서트에 자주 출연하였으며 뉴욕의 맨해튼음악학교 교장이 되었고 뉴욕 시립오페라극장에서 직접 오페라 제작을 맡기도 했다. 그는 위대한 베이스-바리톤이었으며 또한 훌륭한 성악교사였다. 오페라 또는 콘서트에서 무한한 경험을 쌓은후 교사로서 후진을 양성하는 것이 순서이다. 

 

 누구도 따를수 없는 보탄(Wotan)역의 프리드리히 쇼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