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베이스

인생극장의 Franco Ventriglia (프랑코 벤트리글리아)

정준극 2008. 3. 5. 12:44
 

인생극장의 Franco Ventriglia (프랑코 벤트릴리아)


1922년 미국 코네티컷 주 훼어필드에서 태어난 프랑코 벤트리글리아는 1950년대부터 20년 이상을 유럽의 주요 오페라극장에서 이름을 떨친 베이스이다. 그러다가 1978년 미국으로 돌아와 그가 79세로 무대에서 은퇴할 때까지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으며 간혹 동남아에서 무대에도 섰다. 훼어필드의 농장에서 태어난 그는 농부가 되려는 생각을 했다. 1941년 훼어필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해병대에 입대하여 제1해병공수단원으로 남태평양에서 전쟁에 참가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코네티컷의 이스튼(Easton)이란 곳에서 형이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일했다. 그러던중 지휘자 마리오 파가노(Mario Pagano)의 주목을 받아 미국극장연맹예술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유명한 배우 말론 브란도도 그와 같이 이 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예술학교를 다니면서 학비를 벌기위해 비행기 정비사로 일했고 회사에서 1주일에 하루는 학교에 갈수 있는 특별 허락을 받아 성악을 공부했다.

 

프랑코 벤트릴리아가 한스 작스 역할로 명성을 떨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한 장면


얼마후 그를 후원해주던 지휘자 파가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는 아내와 함께 증기선을 타고 무작정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는 여행도중 조금이라도 돈을 벌기위해 배안의 1등 선실에서 ‘Ol' Man River'라는 노래를 불러 1등 객실 승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승객중 어떤 사업가가 그에게 다가와 무척 좋은 노래를 들었다고 칭찬을 한후 로마에 가서 음악을 더 공부하고 싶다면 그가 잘 아는 유명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인 티토 달 몬테(Tito Dal Monte)에게 소개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달 몬테는 그에게 무료 레슨을 해 주었으며 팔레르모에서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 데뷔할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후에 그는 라 보엠과 리골레토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함께 공연했으며 라 스칼라에는 ‘삼손과 델릴라’로 데뷔하였다. 2004년 무대에서 은퇴한 그는 부인과 함께 코네티컷의 월링포드에 있는 양노원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자식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