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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앙상블 Hermann Uhde (헤르만 우데)

정준극 2008. 3. 5. 12:47
 

바그너 앙상블 Hermann Uhde (헤르만 우데)


 에스카미요 역할의 헤르만 우데

 

무대에서 공연 중 세상을 떠나는 경우는 오페라의 연혁에 있어서 극히 드믄 일이다. 1940-60년대에 눈부시게 활동했던 독일의 베이스-바리톤 헤르만 우데(1914-1965)는 공연중에 무대에서 세상을 떠난 특별한 경우의 성악가였다. 헤르만 우데는 1965년 코펜하겐에서 닐스 벤촌(Niels Bentzon)의 ‘파우스트III’을 공연하는 도중 심장마비로 무대 위에 쓰러진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독일 브레멘(Bremen)에서 태어난 헤르만 우데는 1950년대에 바이로이트의 기둥이었던 빌란트 바그너(Wieland Wagner)의 바그너앙상블의 핵심 멤버였다. 그는 바이로이트에서 9개 시즌동안 출연하여 화란인(방랑하는 화란인), 군터, 돈너, 보탄(라인의 황금), 텔라문트, 멜로트 등을 맡아 뛰어난 바그너 베이스-바리톤으로서 화려한 박수를 받았다. 1955년부터 1961년까지는 메트로에 단골 출연하였으며 이때에 맡은 보체크(Wozzeck)는 최고로 완성된 것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더구나 메트로에서의 보체크는 헤르만 우데가 완벽한 영어로 부른 것이어서 화제를 모았었다. 그는 파리 오페라를 비롯한 유럽의 유명 무대에 자주 등장하였다. 그는 몇개의 역할을 세계 처음으로 창조하였다. 칼 오르프(Carl Orff)의 안티고네(Antigonae)에서 크레온(Creon), 벤자민 브리튼의 ‘루크레티아의 능욕’에서 바리톤 역할, 바그너-레즈니(Wagner-Régeny)의 ‘활룬 광산’(Das Bergwerk zu Falun) 등이었다.


우데는 브레멘에서 태어나 그곳 오페라학교를 다녔고 1936년 그곳에서  티투렐(Titurel)로 데뷔하였다. 어머니는 미국인으로서 유명한 바리톤 카를 샤이데만텔(Karl Scheidemantel)의 제자였다. 우데의 본격적인 오페라 출연은 1942년, 전쟁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던 때에 하아그(Haag)의 도이체스극장에서 바리톤 역할을 맡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치 독일군에 입대한 그는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 4월 포로로 잡혀 거의 1년동안을 포로수용소에서 지냈다. 그후 풀려났지만 당장 오페라 무대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1년정도의 휴양후 그는 함부르크, 비엔나, 뮌헨의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는 독일인들에게 그의 바리톤은 시원한 활력소였다. 그의 대표적인 역할은  만드리카(Mandryka), 군터(Gunther), 텔라문트(Terlamund), 그리고 바그너 바리톤으로서는 특이하게도 에스카미요(카르멘)였으며 모두 대성공을 거둔 역할이었다. 지그 하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