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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의 영웅 Nicolai Ghiaurov (니콜라이 기아우로프)

정준극 2008. 3. 5. 12:50
 

불가리아의 영웅 Nicolai Ghiaurov (니콜라이 기아우로프)

 

 돈 조반니 역할의 니콜라이 기아우로프


 

니콜라이 기아우로프는 아마 2차대전후 가장 이름난 불가리아 출신의 베이스일 것이다. 그의 음성은 강력한 힘이 있으면서도 감미로웠다. 더구나 그의 풍모는 오페라 성악가로서 최적이었다. 그는 특별히 베르디의 역할에 뛰어났다. 그는 당대의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와 결혼했고 두 사람은 자주 함께 공연을 했었다. 기아우로프는 1929년 남부 불가리아의 작은 산간 마을인 벨린그라드(Velingrad)에서 태어났다. 음악적 재능이 많았던 그는 어릴때 피아노, 바이올린, 클라리넷, 트럼본을 배웠다.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던 선생은 기아우로프에게 성악가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하였다. 그가 정작 성악가로서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은 불가리아 군인으로 복무할 때였다. 어떤 장교가 기아우로프의 노래를 듣고 ‘야, 대단하다!’라면서 그를 소피아(불가리아의 수도)의 유명한 성악 교수인 크리스토 브람바로프(Christo Brambarov)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브람바로프는 기아우로프에게 이탈리아 오페라를 제대로 부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기아우로프를 보다 유명하게 만들어준 메피스토펠레(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와 필립2세(돈 카를로)는 브람바로프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었다. 브람바로프에게서 1년동안 가르침을 받은후 그는 1950년 모스크바음악원에 들어가 5년동안을 전력으로 성악공부를 하였다. 파리에서 열렸던 국제성악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는 1955년 소피아 오페라 극장에서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중 돈 바질리오(Don Basillio)로 본격적인 오페라 베이스-바리톤으로 데뷔하였다. 2년후 그는 모스크바의 볼쇼이에서 보리스 고두노프 중 피멘(Pimem)을 맡아 대단한 찬사를 받았다. 1960년 그는 라 스칼라에서 보리스 고두노프의 발라암(Varlaam)으로 데뷔하였고 다시 2년후에는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운명의 힘’으로 데뷔하였으며 다음해에는 시카고에서 메피스토펠레로 미국 무대에 데뷔하여 착실하게 경력을 쌓아갔다.

 

한창시절의 니콜라이 기아우로프


그는 마치 폭발하는 듯한 웅장한 음성과 무대에 대한 탁월한 감각으로 단기간에 세계 오페라 무대의 정상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는 러시아 작품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와 프랑스 오페라에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가 세계적인 베이스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것은 그로부터 2년후 라 스칼라에서 ‘보리스 고두노프’의 발라암(Varlaam)을 맡은 때 부터였다. 그의 전성기는 시카고에서였다. 그는 시카고에서 주로 맡은 역할은 메피스토펠레, 보리스 고두노프, 돈 키호테(마스네), 아틸라(베르디) 피에스코(시몬 보카네그라), 실바(에르나니), 프로치다(시실리의 만종), 그레민 공작(유진 오네긴) 등이었다. 메트로 데뷔는 1965년 메피스토펠레였다. 그는 메트로에서 80여 회의 오페라에 출연하였으며 마지막 공연은 1966년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돈 바질리오였다. 그가 처음 오페라에 데뷔하였던 바로 그 역할이었다. 그는 50여년에 걸친 오랜 기간 동안 음악활동을 하다가 2004년 6월 74세를 일기로 이탈리아의 모데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카루소 등의 초기 음반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으며 한편 축구, 낚시에도 대단한 취미를 보였다. 미렐라 프레니와는 23년간을 함께 살았다. 자녀로는 첫 부인에게서 태어난 두 아이가 있다. 아들 블리디미로 기아우로프는 이름난 지휘자로 활약하고 있으며 딸 엘레나 기아우로브는 훌륭한 배우가 되었다. 


돈 카를로에서 필립 역할을 맡은 니콜라이 기아우로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