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슈트라우스 왕조

비엔나 신년 음악회

정준극 2008. 3. 7. 18:42

비엔나 신년 음악회와 요한 슈트라우스 

 

 비엔나 악우회 건물의 황금홀에서 열린 비엔나 신년음악회

 

오늘날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은 비엔나의 365일을 장식하고 있다. 비엔나 음악가연맹(악우회)건물의 황금 홀(Goldene Saal)에서, 호프부르크의 대회의장(Festsaal: Kongress Hall)에서, 쇤브룬 궁전에서, 슈타트파르크(시립공원)의 쿠어살론(Kursalon: 요양살론)에서, 이밖에도 여러 장소에서 저녁마다 요한 슈트라우스-모차르트 연주회가 열린다. 그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요한 슈트라우스 연주회는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주관하는 신년음악회(Neujahrskonzert)이다. 비엔나신년음악회는 1929년 지휘자 클레멘스 크라우스(Clemens Krauss)가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동안 여러 거장들이 지휘봉을 들고 요한 슈트라우스2세를 비롯한 슈트라우스 일가의 작품을 나름대로 해석하였다. 가장 뛰어난 요한 슈트라우스 해석가는 아마 빌리 보스코브스키(Willi Boskovsky)일 것이다. 그는 마치 생전의 요한 슈트라우스가 그러했던 것 처럼 바이올린을 한 손에 들고 지휘하며 연주하여 기쁨을 주었다. 이를 Vorgeiger(포아가이거)라고 부른다. Front Violin(앞에 나와서 바이올린을 연주함)이라는 의미이다. 그후 이같은 제스추어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ti), 로린 마젤(Lorin Maazel)에 의해서도 재연되었다. 한편, 19세기 초반, 요한 슈트라우스 가족이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순회연주 했던 것을 기념하여 1966년에 ‘비엔나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Wiener Johann Strauss Orchestra)가 조직되었다. 오늘날 이 오케스트라는 예전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듯 세계 곳곳을 순회연주하고 있다.

 

 

비엔나 신년음악회가 열리는 음악가연맹건물

                            

요한 슈트라우스와 형제들의 귀중한 악보가 모두 불에 타서 없어질뻔 했다는 것은 알만하 사람들이면 다 아는 에피소드이다. 1907년, 에두아르드 슈트라우스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요한 슈트라우스가 남긴 수많은 오케스트라 편곡 악보를  태워버리겠다고 난리를 쳤다. 악보 더미는 비엔나 마리아힐르퍼(Mariahilfer)구에 있는 용광로 제작 공장에서 재로 변할 뻔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불에 타려던 악보들을 불더미 속에서 꺼낼수 있었다. 하지만 몇장의 악보는 완전히 타버렸으며 나머지도 모두 악보가 조금씩 탔거나 그을렸다. ‘요한 슈트라우스협회’는 이들을 조각조각 맞추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오늘날 그나마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와 폴카를 들을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동생인 에두아르드 슈트라우스는 다른 작곡가들이 요한 슈트라우스의 작품을 자기 것이라고 공공연히 주장하므로 아예 그런 주장이 나오지 않도록 악보를 태워 없애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당시 요한 슈트라우스의 가장 공공연한 라이벌인 칼 미하엘 지레르(Karl Michael Ziehrer)가 특히 그런 주장을 했었다는 후문이지만 확실치는 않다.

 

해마다 1월이면 비엔나악우회의 황금홀에서 이같은 신년무도회가 열린다. 주로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가 연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