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슈트라우스 왕조

라이발과 팬들

정준극 2008. 3. 7. 18:37

 라이발과 팬들

 

‘왈츠 킹’ 요한 슈트라우스와 그의 형제들이 아무런 경쟁자도 없이 독주했던 것만은 아니다. 비엔나 왈츠의 황금시기인 1860-90년대에 실로 여러 명의 왈츠 작곡가들이 요한 슈트라우스에게 도전장을 냈었다. 칼 마하엘 지레르(Karl Michael Ziehrer)와 ‘여학생 왈츠’로 유명한 에밀 �트토이펠(Emile Waldteufel)을 대표적 라이벌이었다. 필립 화르바흐(Phillip Fahrbach) 역시 요한 슈트라우스를 적대시하였다. 필립 화르바흐는 요한 슈트라우스가 제국궁정무도회음악감독(KK Hofballmusikdirektor)으로 응모했을 때 적극 반대하여 결국 몇 년동안 그 직위에 오르지 못했다. 그중에서 지레르의 반발이 가장 심했다. 지레르는 요한과 요셉이 세상을 떠나자 남아 있는 에드아르드에게 도전하여 결국 슈트라우스 가문의 전통을 소멸시켰다. 돌이켜 보면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버지인 요한 슈트라우스1세 또한 동료인 요셉 란너(Josef Lanner)와 요셉 궁글(Josef Gungl)과 대단한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이벌이라고 하는 칼 미하엘 지레르

 

독일 출신으로 파리에서 활동하던 오페레타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역시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에 대하여 상당한 질투심을 가지고 있었다. 오펜바흐는 요한 슈트라우스에 대한 인기를 수그려 트리기 위해 비엔나에서 자기의 오페레타를 더욱 열심히, 더욱 노골적으로 무대에 올렸다. 오펜바흐는 우아한 왈츠보다는 선정적인 캉캉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당기는데 성공하였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시대가 지나고 프란츠 레하르(Franz Lehar)의 시대가 등장하자 그때부터 자연히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는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레하르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가 주도권을 잡고 있던 비엔나를 단순간에 자기의 작품으로 휩쓸었다.

 

 오페레타에 있어서 요한 슈트라우스와 라이벌 관계였다는 자크 오펜바흐

  

그러나 당대에 요한 슈트라우스를 극찬하고 존경한 저명 작곡가들도 많았다.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중에서 ‘술, 여인, 그리고 노래’(Wein, Weib und Gesang)를 특별히 사랑한다고 밝힌바 있다. 요한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는 비엔나에 살고 있을 때 요한 슈트라우스의 절친한 사이였다. 한때 오페레타 ‘박쥐’와 관련하여 동생 요셉 슈트라우스가 작곡해 놓은 것을 형 요한 슈트라우스가 도용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형 요한의 성공을 질투하여 동생 요셉이 의도적으로 표절 및 도용설을 퍼트렸다고 한다. 이 때 브람스가 나타나서 ‘박쥐는 순전한 요한 슈트라우스의 스타일이다. 음악적으로 동생 요셉의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친구 브람스에게 ‘백만 사람에게 둘러싸여’(Seid umschulungen Millionen)라는 타이틀의 왈츠를 헌정하였다. 프리드리히 쉴러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다.

 

브람스와 요한 슈트라우스. 비엔나에서.

 

요한 슈트라우스와 브람스에 대한 전기(傳記)에 따르면 요한 슈트라우스의 딸이 브람스에게 자주 찾아와 부채에 서명을 해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당시에는 부채에 저명인사의 사인을 받는 것이 대단한 자랑이었다. 귀부인들로부터 그런 요청을 받는 작곡가들은 대체로 자기가 작곡한 작품 중에서 몇소절의 멜로디를 부채에 그려주고 사인을 하는 것이 관례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딸로부터 부채에 서명을 부탁 받은 브람스는 자기의 멜로디를 그리지 않고 요한 슈트라우스의 멜로디를 몇줄 그린 후, 그 아래에 ‘불행하게도 요한네스 브람스의 멜로디가 아님’(Unfortunately, NOT by Johannes Brahms)라고 적었다고 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도 요한 슈트라우스를 대단히 존경하였다. R. 슈트라우스가 ‘장미의 기사’의 왈츠를 작곡할 때에 ‘내가 어찌 비엔나의 웃음 천재를 잊을수 있으랴’고 말했다고 한다. ‘비엔나의 웃음 천재’란 당연히 요한 슈트라우스를 말한다.

 

요한 슈트라우스와 친구들 (바로 뒤에 서 있는 여인은 부인 아델레, 그 뒤로 앉아 있는 분이 브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