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슈트라우스 왕조

놀라운 재능의 음악 가족

정준극 2008. 3. 7. 18:36

놀라운 재능의 음악 가족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는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가 변호사가 되기를 원하여 자기처럼 주점에서 바이올린이나 켜며 귀족들에게 굽신거리고 봉사하는 보통 음악인이 되는 것을 극력 반대했다. 그러나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는 어머니 안나(Anna)의 후원에 힘입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전속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연주활동을 시작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요한 슈트라우스는 여러 개의 오케스트라를 설치하였으며 그 중에는 아버지를 기념하여 조직한 아폴로(Apollo)라는 오케스트라도 포함되어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러시아의 미하엘 대공과 알렉산더2세 황제의 초청을 받아 생페테르부르크 근교의 파블로브스크(Pavlovsk)에서 한동안 지낸 일이 있다. 생페테르부르크에서 파블로브스크까지의  철도는 러시아 최초의 철도로서 파블로브스크 기차역은 연주회장으로도 이용되었다. 파블로부스크 기차역에서 연주회를 가진 작곡가들은 요한 슈트라우스, 요한네스 브람스, 로베르트 슈만 등 수없이 많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너무나 일정이 바빠지자 동생들인 요셉과 에두아르드를 대신 활용키로 했다. 특히 건강이 좋이 않을 때에는 누군가 대타자가 필요했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동생들은 형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점차 발전하였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형제들 (왼쪽 요셉과 오른쪽 에두아르드)

 

1853년 요한 슈트라우스는 신경통과 협심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까지 했었다. 당시 요한 슈트라우스는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그러했던 것처럼 비엔나 근교의 바덴(Baden bei Wien)에서 요양하였다. 슈트라우스 가문의 음악 활동이 끊어질 것을 걱정한 어머니 안나는 요셉에게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를 대신 맡도록 간청하였다. 처음에는 요한 슈트라우스만을 찾던 비엔나 시민들도 나중에는 요셉과 에두아르드를 열렬하게 환영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요한 슈트라우스는 ‘내 동생 요셉이 형제들 중에서 제일 재주가 뛰어나다. 다만, 나는 좀 더 인기를 끌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요셉과 에두아르드는 나름대로 왈츠를 작곡하였다. 그러나 무어라고 해도 요한이 가장 앞서 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왈츠 킹’(Walzer König)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An der schönen blauen Donau)는 제2의 오스트리아 국가(國歌)라고 불릴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원래 이 곡은 합창곡으로 작곡된 것으로 가사는 어떤 무명 시인이 촌스러운 언어로 적은 것이었다.

 

요한 슈트라우스1세(아버지: 왼쪽)과 요제프 란너(Joseph Lanner) 기념상. 라트하우스플라츠.

 

슈트라우스 형제들에 대한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이들 3형제가 대승리를 거둔 연주는 1860년대 초반의 뮤지컬 조크인 ‘무궁동’(無窮動: Perpetuum Mobile: 작품번호 257)이었다. 스테이지에 요한, 요셉, 에두아르드가 각각 지휘하는 세 개의 오케스트라를 두고 서로 번갈아 바톤을 주고받으며 연주하는 음악이었다. 세 형제는 여러 형태의 연주회를 개최하여 비엔나 시민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비엔나 폭스가르텐(Volksgarten: 현재의 비엔나 시청 건너편의 공원)에서 연주회를 가졌을 때에는 플래카드에 ‘금야(今夜) 슈트라우스가 연주함’이라고만 쓰고 청중들에게 어떤 슈트라우스의 작품을 연주하는지 알아내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히칭에 있는 카페 돔마이어 앞의 요한 슈트라우스 기념상

 

바덴 바이 빈의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요제프 란너 기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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