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이탈리아

보논치니 가족

정준극 2008. 3. 11. 15:33

모데나의 자부심 보논치니 가족

 

이탈리아의 오페라를 일고함에 있어서 17세기 모데나(Modena)의 보논치니(Bononcini) 가족을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연혁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3부자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조반니 마리아 보본치니, 아들 조반니 바티스타 보논치니와 안토니오 마리아 보논치니가 그 세사람이다. 서로 이름들이 비슷비슷하여 혼동될 염려가 있으므로 주의를 필요로 한다. 모데나가 어떤 곳인가? 세계 최고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세계 최고의 소프나로 미렐라 프레니가 같은 해(1935)에 태어난 곳이다.

  

조반니 마리아 보논치니의 음반 표지 

                  

조반니 마리아 보논치니(Giovanni Maria Bononcini: 1642-1678)는 볼로냐와 모데나에서 작곡가, 합창지휘자,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였다. ‘음악 실습’(Musico prattico)이라는 유명한 책을 썼다. 조반니 바티스타(Giovanni)와 안토니오 마리아(Antonio Maria)의 아버지이다.

 

조반니 바티스타 보논치니

 

○ 조반니 바티스타 보논치니(Giovanni Battista Bononcini: 1670-1747)는 당대에 국제적으로 가장 명성을 떨친 작곡가이다. 그는 아버지 조반니 마리아 보논치니와 함께 볼로냐에서 음악 공부를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동기동창이었다. 하지만 청출어람! 아들 조반니의 재능이 일취월장하였다. 볼로냐에서 공부를 마친 아버지는 고향 모데나로 돌아가 성당에서 합창지휘와 오르간 연주를 맡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아들 조반니는 몬테에 있는 산 조반니(San Giovanni)성당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부터 시작하여 계속하여 사방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특히 로마에서 지내는 동안 오페라 Camilla(카밀라)를 완성하여 나폴리에서 초연을 가졌던 일은 기록에 남을 만한 일이다. 그의 명성을 떨치게 해준 결정적인 계기였다. 나폴리 공연 이후 카밀라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특히 합스부르크제국의 비엔나에서 인기가 높았다. 조반니는 1698년 28세라는 젊은 나이로 비엔나에 초청을 받아 합스부르크의 레오폴드1세를 위해 일했다. 그는 거의 20년이란 세월을 비엔나에서 활동했다.

    

조반니는 50세 때에 런던행 여객선을 탔다. 영국에서 자꾸 오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영국 사람들은 오래전에 런던에서 공연되어 성공을 거둔 카밀라를 잊지 않고 있었다. 런던에서 공연된 Astarto(아스타르토)는 대성공이었다. 런던 사람들은 조반니를 보고 환호하였다. 조반니는 그런 런던이 좋아졌다. 그래서 런던에서 살기로 작정하고 계속해서 오페라를 작곡했다. 계속 성공이었다. 헨델과 조반니는 필립포 마테이라는 또 다른 이탈리아 작곡가와 함께 트리오가 되어 이탈리아 오페라를 런던에 정착시키는데 지대한 기여를 했다. 조반니의 카밀라는 그 선봉이었다. 조반니 보논치니, 헨델, 필립포 아마데이(Filippo Amadei: c 1670-1740)는 합작으로 오페라를 작곡하여 무대에 올릴 정도로 의기투합했었다. 오페라 Muzio Scevola(무치오 스케볼라)는 이들 트리오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합작이다. 그러자 남이 잘되는 것을 못보는 영국 사람들이 조반니에 대하여 서서히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이탈리아 오페라를 공격하면서 은근히 조반니의 오페라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비평가들은 노골적으로 헨델의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하여는 그래도 박수를 보내면서 조반니의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하여는 트집을 잡았다. 헨델 자신도 조반니를 라이벌로 생각한것 같았다. 전에는 ‘요즘 식사 잘 하십니까?’라고 묻기도 했는데 어느덧 다시 만나도 아는 체를 하지 않는 처지가 되었다. 불행하게도 그는 영국에서 오페라 작품을 표절했다는 혐의를 받고 추방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런던이여, 잘 먹고 잘 살아라!’라고 외친 조반니는 63세 때에 파리로 갔다가 마침 비엔나의 마리아 테레자 여제가 연금을 두둑이 줄테니 오라고 해서 71세의 노령으로 비엔나에 가서 6년을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70평생을 살면서 많은 작품을 생산했다. 무대 음악 62편을 비롯하여 약 3백편의 칸타타, 그리고 미사곡들을 썼다. ‘바로크 순수성’(Baroque Simplicity)이라는 용어는 그의 작품을 설명하는데 사용되는 것이다.

   

조반니 보논치니의 오페라 수첩

 

● Il trionfo di Camilla(또는 Camilla 라고 함. 1696. 나폴리) ● Astarto(1720. 런던 Haymarket Theater) ● Muzio Scevola(1721)● Crispo(1722) ● Griselda(1722) ● Erminia(1723) ● Calfurnia(1724)


 안토니오 마리아 보논치니


안토니오 마리아 보논치니(Antonio Maria Bononcini: 1677-1726)는 모데나 공작의 궁정에서 음악감독을 지냈다. 그러면서 여러 편의 오페라를 작곡하여 대부분 베니스에서 공연했다. 안토니오 마리아 보논치니의 오페라에는 Pasticcio(파스티치오) 형식이 자주 사용되었다. 다른 사람의 노래를 자기 오페라에 직접 사용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편곡하여 인용하는 수법이다. 예컨대 Sesostri re d'Egitto라는 오페라에는 J. L. König가 작곡한 Heinrich der Vogler(새잡이 하인리히)가 나오며 La conquita del vello d'oro에는 마우로 휘들러(Mauro-Fiedler)가 작곡한 Der rasende Roland(미친 올란드)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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