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과의 인연
페르디난도 파에르
페르디난도 파에르(Ferdinando Paer: 1771-1839)는 21세의 약관에 이미 파르마 궁정상임지휘자(Maestro di Cappella)가 되었고 5년후에는 비엔나 캐른트너토로(Kärntnertor)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초청을 받아 활동할 만큼 재능이 뛰어난 작곡가였다. 그는 비엔나에서 베토벤을 만나 깊은 인상을 받아 베토벤 스타일의 신고전주의 음악을 만들고자 생각했다. 파에르는 비엔나의 음악적 분위기에 매료되어 그 속에서 지내면서 자기의 음악을 개발시키는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파에르의 다음 임지는 드레스덴이었다. 드레스덴 궁정 싱임지휘자로 약 4년을 지냈다. 그후 파리로 자리를 옮겼다.
나폴레옹은 파에르를 무척 존경하였다. 나폴레옹은 전쟁을 누비는 가운데에도 파에르에게 함께 다닐것을 부탁하여 포즈난과 바르샤바까지 함께 갔던 일도 있다. 그런 인연으로 파리는 파에르의 영원한 거처가 되었다. 파에르는 파리 오페라 코믹과 파리에 있는 이탈리아극장의 감독이 되었다. 1820년대에 그는 여러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 중에는 리스트도 들어있었다. 18세기에 유럽의 여러 궁정은 이탈리아 작곡가를 카펠마이스터, 즉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임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파에르는 프랑스 왕정체제의 마지막 궁정 카펠마이스터였다. 오페라의 역사에 있어서 파에르는 치마로사와 파이시엘로가 세상을 떠난후 19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이탈리아 오페라를 주도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소포니스바' 음반 표지
파에르의 오페라 수첩
● Il Tempo fa giustizia a tutti(1792 파르마) ● L'Intrigo amoroso(1795 베니스) ● Il Principe di Tarato(1797 파르마) ● La virtu al cimento(1798 파르마) ● Camilla(Il Sotteraneo. 1799 비엔나 Kärntnertor극장) ● Poche, ma buoni(1800 비엔나 Kärntnertor극장) ● Achille(1801 비엔나 Kärntnertor극장) ● Sargino(L'Alliievo dell'amore. 1804 드레스덴) ● Leonora(L'Amofre conjugale. 1804 드레스덴) ● Sofonisba(1805 볼로냐) ● Agnese di Fitz-Henry(1809 파르마) ● La Maitre de Chapelle(Le souper imprevue. 1821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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