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이 존경한 작곡가
루이지 케루비니
플로렌스에서 태어난 루이지 케루비니(Luigi Cherubini: 1760-1842)는 26세의 젊은 나이로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파리에서 살았다. 케루비니는 당시 파리 음악계의 유력한 인사였던 비오티(Viotti)가 영향력있는 인사들에게 소개해주어 순탄한 음악활동을 할수 있었다. 케루비니는 1795년에 창설된 파리음악원(Paris Conservatoire of Music)의 교수로 임명되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27년간을 봉직했다. 그는 오페라도 작곡하였으나 종교 음악에 더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그의 진혼곡 C단조는 위대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여러편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베토벤은 그의 교향곡을 듣고 ‘당대에 존경할만한 인물은 케루비니 선생 뿐!’이라고 말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이후의 작품을 듣고 싶으면 케루비니의 교향곡을 들으면 된다고 할 정도로 케루비니도 베토벤을 존경하였다. 케루비니는 베토벤보다 10년 위였다.
'이틀간의 사건'
케루비니라는 이름을 케루비노와 혼돈하지 말기를! 케루비노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드라마 속의 인물일 뿐이다. 그러나 케루비니의 세례명 풀 네임은 무척 길다. 마리아 루이지 카를로 체노키오 살바토레 케루비니(Maria Luigi Carlo Zenokio Salvatore Cherumini)이다. 루이지 보케리니와 루이지 케루비니도 혼돈하지 말것. 케루비니는 약 30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하지만 현재 알려진 작품은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Les deux Journèes(이틀간의 사건)는 베토벤의 Fidelio(휘델리오)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은 것이다. 1797년에 파리에서 초연된 Médée(메데)는 폭넓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메데에서의 아리아 Ah, nos peines는 오페라 아리아 연주회의 목록으로 자주 올라가는 곡이다.
Lo sposo di tre e marito di nessuna 세계 초연 장면
케루비니의 오페라 수첩
● Il giocatore(1775) ● Lodoïska(1791) ● Mèdéa(1797. 이탈리아어 대본으로도 번역되어있음.) ● Les deux Jounées(이틀간의 사건: 1800) ● Der Wasserträger(1800) ● Anacréon(1803) ● Faniska(1806) ● Pigmalion(1809) ● Les Abencerages(1813) ● Ali Babà(1833) ● Lo sposo di tre e marito di nessu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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