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프랑스

베를리오즈, 엑토르

정준극 2008. 3. 13. 10:10
 

인습타파주의자 

엑토로 베를리오즈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1869)는 진정한 의미에서 오페라의 인습타파주의자였다. 그는 의심할 필요도 없이 아방-갸르드적인 환상주의자였다. 이를 영어로는 이코노클라스트(Iconoclast)라고 한다. 이콘(Icon)이란 우상처럼 숭배하는 성상(聖像)을 말한다. 그는 종래의 인습적인 오페라 작곡 패턴을 과감히 타파하였다. 베를리오즈에게 있어서 작곡은 우선 그의 현미경적인 머리 속에 자리 잡고 있어야 했다. 하모니의 법칙은 어떻게 할 것인지, 아리아는 어떤 형태로 할 것인지, 오케스트라의 편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우선 머리 속에 완전히 그려 놓은 후 작곡에 들어갔다. 작곡이 그의 구상대로 진행되면 계속했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면 원위치였고 이미 써놓은 악보도 모두 버렸다. 그는 성공적인 작곡가였지만 어쩐 일인지 세계 음악계의 방관자로 남아 있었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베를리오즈의 과감하고 어찌보면 무모하기도 했던 개혁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인정받았다.

 

'베아트리스와 베네딕트'.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


베를리오즈의 대표작은 Les Troyens(트로이 사람들)이다. 이 오페라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평가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19세기 프랑스 오페라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는 인정을 받았다. ‘트로이 사람들’은 마치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보는 것과 같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탄호이저가 자기 동생을 만나기를 요청하고 있다’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워낙 장편 드라마여서 프랑스에서조차 전편이 제대로 공연되는 일이 드믄 입장이다. 지금까지는 상당부분을 각색하거나 삭제하고 공연했다. 전체 공연시간은 중간에 짧은 휴식 시간을 포함해서 다섯 시간이 넘는다. 공연시간이 너무 길다보니 다른 것은 몰라도 먹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배가 고프게 된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게다가 화장실도 가야하기 때문에 극장측은 생각 끝에 베를리오즈의 대작을 기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단지 배고픈 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버텨야하기 때문에 기피했던 것만은 아니다. 우선 최고급 성악가가 거의10명이나 출연해야 한다. 이는 제작자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는 사항이다. 게다가 무대 장치가 방대하고 특수 효과를 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경비가 엄청 든다. 때문에 웬만해서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초연 때, 제작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필요한 제작비를 얻어 내느라고 무척 고생했다. 프랑스 정부는 왜 그런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하지 못했다. 그래 제작 규모를 축소하라고 지시했다. 단, 베를리오즈 몰래!


'트로이 사람들'. 암스텔담 무대.


‘트로이 사람들’의 초연은 규모가 축소된 무대로서 이루어졌다. 베를리오즈는 축소 무대를 용하게 알아보고 만족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어쩔수가 없었다. 그 후로부터 몇 년 동안 베를리오즈는 자기 작품의 풀 스케일 공연을 위해 정부 측을 상대로 많은 투쟁을 했다. 물론 정부의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의 알량한 오페라 보조정책에 실망한 베를리오즈는 다시는 오페라에 손도 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정부 당국에 의한 ‘축소판 트로이 사람들’의 초연이 있은지 3년후 베를리오즈는 세상을 떠났다. 트로이 사람들이 베를리오즈를 죽게 했다는 소문일 흘러 나왔다. ‘트로이 사람들’의 No cut 공연은 베를리오즈 사후 21년에야 겨우 이루어졌다. 독일에서였다. 독일이 프랑스에 대한 일종의 경쟁심으로 이 오페라의 풀 스케일 공연을 지원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된 완전 공연은 1935년에야 겨우 실현되었다. 베를리오즈 사후 66년만의 일이었다. 베를리오즈는 오페라 작곡가라는 본업이 성공적이지 못하자 직업을 바꾸어 교향곡을 작곡했다. 그에게 있어서 오페라 이외의 작곡은 전혀 다른 직업이었다. 베를리오즈는 생전에 6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모두들 대작들이다. 베를리오즈는 마지막 오페라 Romeo et Juliette(로미오와 줄리엣)를 완성한후 세상 떠날 때까지 20여년 동안 오페라를 쓰지 않았다.

 

'벤베누토 첼리니', 더치 내셔널 오페라


베를리오즈의 오페라 수첩

● Béatrice et Bénédict(베아트리스와 베네딕트: 1862. 스피어 원작. 베를리오즈 대본) ● Benvenuto Cellini(벤베누토 첼리니: 1838. Auguste Barbier 대본) ● Lého ou le Retour á la vie(1840? 베를리오즈 대본) ● La damnation de Faust(파우스트의 저주: 1846. 괴테원작. 베를리오즈 대본) ● Les Troyens(트로이 사람들: 1863. 비르길리오 원작. 베를리오즈 대본) ● Romeo et Juliette(로미오와 줄리엣: 1847. 셰익스피어 원작. 베를리오즈 대본)